SPC그룹 계열사인 SPL 제빵 공장에서 지난 15일 20대 근로자가 식품 혼합기에 끼어 숨진 데 이어 21일 경기 안성 공사장 추락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23일에도 역시 SPC 계열인 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근로자가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등 산업 현장 사고가 최근 잇따랐다. 이에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산업 재해를 막자는 취지로 올 1월부터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이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대법 시행 후에도 하루 1.8명 사망

중대법은 지난해 1월 제정, 1년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1월 27일 발효됐다. 일정 규모(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 규모 50억원 이상) 회사에만 적용한다. 중대한 산업 재해(사망·질병 등)가 발생하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내린다. 처벌받기 싫으면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란 취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1월 27일) 후 중대 재해 발생 현황

그런데 그 뒤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중대법 시행(1월 27일) 후 9월 말까지 일어난 중대 재해는 443건, 사망자는 446명이었다. 사망자가 하루 1.8명이다. 지난해와 비교하자면 1~8월 기준 올해 산업 재해 사망자는 432명. 지난해 같은 기간 441명에서 9명 줄었다. 법이 새로 생겼지만 산업 재해로 숨진 근로자가 거의 줄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노동계에서는 “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경영계는 “법 규정이 불명확하고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책임이 너무 크다”고 비판하는 등 양 당사자들 모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지난달 19일까지 고용부가 중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사건은 56개. 이 중 21건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현재까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2건에 그치고 있다. 중대법 위반으로 처음 기소된 경남 창원 에어컨 부속 자재 제조업체 두성산업은 지난 13일 중대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법원에 신청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중대법 효과를 둘러싼 논란과 반목이 심하자 정부는 고심하고 있다. 당초 기업들 요구를 어느 정도 반영해 시행령을 개정하려 했으나 최근 사고로 여론이 좋지 않자 이를 유보하고 새로운 중대 재해 감축 로드맵을 만들어 조만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주로 산업 현장을 안전하게 개선할 수 있게 노사가 자율적으로 예방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 주로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중대법 취지는 원래부터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안전 관리 체계를 만들게 하는 것이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 개선부터”

산업 안전 전문가들은 단지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안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안전 설비 투자를 늘리도록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교수는 “안전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경영자 처벌 위주 규제는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대법이 처벌을 강조하자 기업들은 안전 대신 법적 대응에 비용을 늘리는 등 역효과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안전 교육·감독을 전담하는 독립기관(산업안전청)을 출범시키고 기존 산업안전감독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중대법을 통과시키면서 산업안전감독관 규모도 2배 가까이 늘렸지만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SK지오센트릭 울산공장은 지난 8월 안전감독관 점검 결과, ‘추락방지 미조치’ 등으로 시정·과태료 처분을 받았는데, 그 이틀 뒤에 폭발 사고가 발생, 1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경남 창원 현대비앤지스틸도 지난 5월 ‘안전난간 설치 기준 미준수’ 등으로 과태료를 맞았지만, 최근 한 달 사이 근로자 2명이 사고로 숨졌다.

정부는 일단 이번에 사망 사고가 발생한 SPC 그룹에 대해 강력한 산업안전보건 기획 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삼립, 파리크라상, 배스킨라빈스 등 계열사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불시 감독하기로 했다. 이 밖에 식품 혼합기 및 이와 유사한 위험 기계를 사용하는 업체 등 13만5000여 곳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단속에 나선다. 단속 대상에는 식품 혼합기 외에도 철골·굴착기·사다리·거푸집·프레스·크레인 등이 포함된다. 안성 공사장 추락 사고에 대해서도 근로감독관 15명으로 이뤄진 합동수사전담팀을 보내 수사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