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중대재해 처벌을 무력화하지 말라'며 검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대폭 수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대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가해 이를 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산업안전보건법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처벌과 감독 위주였던 산업재해 대책을 자율과 예방 위주로 전환하는 방안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국정과제로 약속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최종 검토 작업에 착수했고,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그동안 논란이 됐던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기업에 대한 경제적 불이익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사망 등 중대 산업재해가 일어난 회사에 대해 경영자는 1년 이상 징역 등 형사처벌, 법인은 50억원 이하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에 과징금 부과 항목을 추가해 형사처벌이나 벌금보다는 과징금 같은 경제적 불이익을 중심으로 중대재해를 단속하겠다는 구상이다. 과징금 규모에 대해서는 더 논의하기로 했다.

이 같은 판단에는 그동안 중대재해법이 ‘개인에 대한 화풀이식 처벌이다’ ‘법 규정이 복잡하고 모호해 지키기 어렵다’ ‘효과가 불확실하다’ 등의 지적을 받은 것이 고려됐다. ‘중대재해법이 사문화되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월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산재 사망 사고는 192건. 이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건 30건이다. 재판에 넘겨진 사고는 4건. 전문가들에게선 ‘경영자가 안전 체계를 제대로 만들지 않아 사고가 벌어졌다는 인과성을 법적으로 증명하긴 쉽지 않다’ ‘결국 법원이 고의성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영자 처벌은 어차피 실제론 잘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벌금보단 과징금이 더 효과적인 제재라는 인식도 작용했다. 벌금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년씩 걸릴 수 있지만, 과징금은 행정 제재라 바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징금은 대부분 형사처벌과 병행하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을 산업안전보건법과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지금은 산재 사고가 나면 형법(업무상 과실치사)과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복 적용된다. 다만 정부는 “(과징금이 있어도) 상습·반복 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은 계속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며 개편이 법 폐지는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드맵에는 이 밖에 처벌과 감독 위주였던 산재 정책 패러다임을 자율 예방 위주로 전환하고 집중 지원하는 항목도 담겨 있다. 영국과 독일, 일본 등 안전 선진국처럼 가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사업장에 일괄적인 안전 지침을 내리기보다 사업장마다 각각 실정에 맞는 안전 규칙을 만들게 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관리한다는 발상이다. 산재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안전 지원과 관리도 대폭 강화하고,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근로자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핵심 수단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위험성 평가’의 대대적인 확대·개편이다. 위험성 평가는 노사(勞使)가 함께 작업 현장 위험 요인을 파악해 개선 대책을 세우는 제도다. 2013년 도입됐지만 강제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운용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이를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 참여도 확대하고 안전관리 전문 인력도 양성한다. 로드맵에는 지난해 1만명당 0.43명이던 산재 사망자 비율을 2026년까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만명당 0.29명까지 떨어뜨리겠다는 목표도 들어간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이 노동계와 야당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은 풀어야 할 숙제다. 과징금 등 경제적 제재가 추가로 생기는 것에 대해 기업들이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