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에서 실직자들이 실업급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경기도에서 식당을 하는 A씨는 작년 10월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B씨에게서 특이한 제안을 받았다. 계약 기간을 7개월만 하자는 것. 전 아르바이트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이유는 실업급여에 있었다. 실업급여를 타려면 180일(만 6개월)은 일해야 하는데 그 기간만큼만 채운 뒤 실업급여를 받겠다는 속셈이었다. B씨는 “7개월 일하면 실업급여를 넉 달 탈 수 있는데, 이런 노하우를 서로 공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실업급여 운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일탈 현상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까다롭게 적용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29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최저임금과 실업급여 간 연동 체계를 없앨 계획이다. B씨처럼 아르바이트들이 7개월만 일하는 꼼수를 쓰는 건 현재 실업급여가 ‘최저임금의 80%’라는 하한액 규정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시절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실업급여 하한액이 32%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보다 실업급여 실수령액이 많아지는 경우가 생겼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면 사회보험료·세금을 떼고 월 180만4339원을 받는데, 실업급여 하한액은 이보다 4만2701원 많은 184만7040원이다.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최저임금의 90%’였던 하한액 기준을 ‘80%’로 낮췄는데도 그렇게 됐다.

이러다 보니 “최저임금 받고 일하느니 차라리 실업급여가 낫다”는 정서가 퍼지면서 ‘7개월 계약 기간’은 물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지원서만 내고 면접에는 ‘노쇼(no show)’하는 ‘무늬만 구직자’들도 많아졌다. 실업급여 수준이 올라가다 보니 실업급여 목적이 원래 취업을 독려하자는 취지인데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만 빼먹는 ‘불량 수급자’들도 늘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현장에선 “실업급여 받는 대신 일하는 게 억울하진 않게 해달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최저임금의 ○%’라는 실업급여 하한액 조건을 없애고 “최저임금보다 실업급여가 낫다”는 인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실업급여 하한액을 사실상 낮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무늬만 구직자’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한다. 전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4주마다 한 번씩 회사에 이력서 제출·면접 등 구직활동을 하거나 학원·고용센터 프로그램을 수강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첫 16주까지는 전과 같이 4주에 한 번 구직활동·수강을 하면 되지만, 이후엔 4주에 최소 두 번 이상 해야 한다. 실업급여를 여러 번 반복해서 탄 사람은 구직 활동 없이 학원 수강 등만 해서는 실업급여를 탈 수 없다. 면접 노쇼를 하는 구직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밖에 상반기 중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채워야 하는 자격 기간과 지급 수준, 지급 기한 등에 대한 개편안도 추가로 마련해 발표한다. 국회에는 이미 2021년 11월 정부가 마련한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5년 동안 세 번 이상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실업급여를 10~50% 줄이는 내용이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된 노동자가 원치 않게 일자리를 잃으면 급여를 지원하는 사회보험이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2017년 120만명에서 2021년 178만명까지 급증했다가 지난해 163만명으로 다소 줄었다. 나이와 일한 기간에 따라 최소 120일에서 최대 270일까지 받을 수 있고 여러 번 반복해 탈 수도 있다. 하루 상한액은 6만6000원(월 198만원)이고,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인 6만1568원(월 184만7040원)이다.

실업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만 해도 10조2500억원 적립금이 쌓여 있었지만, 실업급여가 너무 많이 지급되면서 현재는 사실상 기금이 고갈된 상태다. 2021년 한 해에만 실업급여로 12조1000억원이 지급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