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에 ‘AI가 일터에 도입되면 누가 일자리를 잃게 될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AI는 ‘전반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아져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답했다. 국무총리 산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데이터 기반 미래숙련 전망체계 구축’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연구진은 미국 노동부 고용훈련국이 사람이 하는 업무를 1만8858가지로 분류해놓은 데에서 출발했다. 연구진은 이 업무 각각에 관한 설명을 과학기술·경제학·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 12명에게 보여주고, 각 업무가 앞으로 10년 내에 AI와 이를 탑재한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러나 전문가 12명이 1만8858가지 업무 하나하나에 대해 응답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는 958가지 업무만 무작위로 제시해 응답을 받고, 전문가들의 응답 내용을 AI에게 학습시켰다. AI에게 전문가 12명 응답 데이터에서 규칙성을 찾아내게 한 뒤, 나머지 1만7900가지 업무에 대해서도 동일한 규칙을 적용해 판단해 보게 했다.

◇AI 대체 위험 일자리 전체의 9.5%

연구진은 AI가 생성한 응답 데이터를 통해, 각 직업이 2030년에 AI(AI 탑재 로봇 포함)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추산했다. 연구진은 하나의 직업은 몇 가지 ‘업무’를 주로 하는 자리로 볼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예를 들어, 간호사라는 직업은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체온·혈압을 측정하는 업무, 환자에게 검사·치료 절차를 안내하는 업무,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는 업무, 환자의 호출에 답해 환자를 돕는 업무를 주로 하는 자리다. 어느 직업 업무 대부분이 AI에 대체된다면, 이 직업은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어느 직업에서 주로 하는 업무 가운데 일부만 AI에 의해 대체된다면,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일하는 방식이 바뀌기는 하겠지만 직업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랬더니 2030년에는 전체 일자리의 9.5%가 AI에 대체될 위험에 노출되고, 48.6%는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일자리에 있는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직업 가운데 기술적으로 AI가 사람을 대신하지 못할 직업은 하나도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 대체 여부를 가르는 것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나 신기술 도입의 경제성 같은 사회적·경제적 요인들이었다. 이런 요인들까지 고려했을 때 AI에 대체될 확률이 70%가 넘는 직업은 153가지였다.

◇AI 도입으로 전체 일자리 221만개 증가

AI가 사람 일자리를 뺏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더 많은 부가가치와 더 많은 일자리를 낳고,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직업도 만들어낸다. 불황이나 대량 실직으로 인한 수요 감소가 일어나지 않고 AI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경제에 온전히 반영된다면, 한국은행이 분류한 우리나라 32개 산업 가운데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산업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전체 일자리 수는 221만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도·소매 및 상품 중개 서비스업(13.1%), 금융·보험업(12.9%),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11.1%) 등의 일자리가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과거 ATM 기계 도입 당시를 예로 들어,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오히려 사람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ATM 기계 도입으로 은행 텔러(출납 사무원)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텔러 일자리가 늘었다. 자동화 기계 도입이 가져온 편의성과 생산성 향상이 은행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작업 절차가 규격화돼 있거나, 간단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주로 하는 직업, 분류·정리가 주 업무인 직업들은 기술적으로 대체가 쉬울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저항도 작을 것으로 예상됐다. 기계나 장치를 조작하는 직업도, 그 조작이 버튼 누르기처럼 단순하든 운전처럼 복잡하든 쉽게 대체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이유로 금형 제작자, 원고 교정자, 사무기기(복사기 등) 조작원, 상품 진열대 관리원, 매장 수납원 등이 AI에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으로 꼽혔다. 다른 대다수 직업들도 AI 도입 이후 어떤 식으로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재활 상담사, 교육·경력 상담사 등 사람을 심리적·신체적으로 지원하는 직업들은 단기간에 AI에게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비상 관리 책임자, 구급대원 등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직업들도 자동화가 어려울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관찰관, PD, 학교 관리자(교장·교감 등), 스포츠 지도자(감독·코치), 변호사, 치과 교정 전문의, 산부인과 의사, 보육 교사, 간호사, 최고경영자(CEO) 등도 대체될 확률이 낮았다.

연구진은 “소규모 개방 경제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대체 효과보다는 국가 경쟁력 확보를 통한 (일자리 규모를 늘리는) 규모 효과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며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산업의 확대와 내수 및 수출 경쟁력 강화로 고용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