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박상훈

재작년 대학을 졸업한 A(27)씨는 지난해 한 패션 기업의 인턴 과정에 합격했다. 인턴 중 일부를 정규직으로 뽑는 채용 연계 자리였다.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그런데 매장 유니폼은 개인 돈 10만원을 들여 사 입어야 했다. 매장 근무에서 필수인 유니폼은 정규직에게만 지급됐기 때문이다. A씨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채용 평가가 걸려 있어 항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대졸자 B(25)씨도 작년 하반기 서울의 한 케이블 방송국에서 채용 연계 인턴으로 한 달간 일했다. 자정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다. 새벽에 ‘두 시간 일찍 출근해달라’는 연락을 받는 경우도 잦았다. B씨는 “당시 인턴 시기가 겹친 금융회사 두 곳의 공채도 포기하고 ‘채용 연계’라는 말에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불평 한마디 없이 일했지만 결국 채용되지 못했다. 지금은 다시 대기업에서 채용 연계 인턴을 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요즘 인턴 경력은 취업 필수 코스로 통한다. 청년 구직자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인턴 자리에 매달린다. 취업난 속에 인턴 자리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인턴 청년’들은 갈수록 늘어나지만 부당한 대우와 불안정한 조건이 이들을 눈물 짓게 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기업 512곳을 조사한 결과, 입사 지원자의 역량 판단 기준으로 면접(24.2%)과 프로젝트 수행 경험(16.6%)에 이어 관련 인턴 경험(15.6%)이 세 번째로 꼽혔다. 전공(14.8%)과 자격증(14.1%)보다 인턴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한 취준생(25)은 “최종 면접에 3번 올라갔는데 다른 지원자 10명 모두 인턴 경험이 있었다”며 “좋은 회사일수록 인턴 경험자의 지원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취업 시장에서 ‘을(乙)’의 위치에 있는 인턴들은 각종 불이익과 차별을 감수하고 있다. 건축 전공 대학생 C(27)씨는 한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을 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용 노트북을 지급받지 못했다. C씨는 “단체 채팅방도 정규직들이 모인 방과 인턴들이 모인 방이 따로 있었는데 소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지방 출신 취준생들은 두어달 인턴 생활을 위해 비싼 방값을 치르고 수도권 생활을 해야 한다. 전북 전주 출신인 D(25)씨는 “인턴 같은 취업 경력을 쌓을 기회는 서울 아니면 수도권에 몰려 있다”며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서울에 사는 친구 자취방 관리비를 대신 내주면서 같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외곽에 사는 취준생 E(25)씨는 인턴을 하는 서울 회사까지 출근 시간만 2시간 20분이 걸린다. 그는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구할까 고민도 했지만, 인턴 월급으로는 100만원이 넘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취업하지 못하고 인턴 자리를 맴돌면서 한두달마다 여러 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인턴 기간이 짧다 보니 원룸을 비싸게 단기로 빌리거나 고시원과 고시텔을 전전하기도 한다. 대학생 F(24)씨는 “어렵게 인턴 기회를 얻어 회사 근처에 고시텔을 잡았는데 약 10㎡(3평)짜리 방에 제대로 된 창문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월 50만원이라 인턴 월급의 4분의 1을 내야 한다. 한 IT 기업 인사 담당자는 “같이 일한 인턴 15명 중 10명 이상이 주거 문제로 고민하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