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남해군 한 병원에서 한 주민이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있다. /뉴시스

23일 보건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기준으로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의심 사례는 모두 36명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청은 36건 중 이날까지 26건에 대해 사망 원인 조사를 실시했고, 모두 백신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해 백신 접종을 예정대로 지속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질병관리청은 “전날까지 접수된 26건에 대해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한 결과 백신 접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며 “접종을 중단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사망 신고 사례 중 절반 이상에서 백신 접종과 무관하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독감 접종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백신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급성 과민 알레르기반응)가 나타난 사례는 없었다. 질병청은 “26건 중 일부는 심혈관계 질환 등 명백하게 다른 사인이 확인됐다”고 했다. 이날까지 접수된 사례의 평균 연령은 74.9세로, 사망자가 고령층에 집중된 것도 백신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본 근거다.

질병관리청은 “자문 기구인 예방접종피해조사반에서 예방 접종을 중단할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접종 지속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질병청은 24일 오전 예방접종전문위원회 회의를 열고 민간 전문가와 향후 예방 접종 계획을 최종 결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이날 자체적으로 백신 접종 중단을 권고한 서울 영등포구와 경북 포항시에 대해 공문을 보내 중단 권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질병청은 “향후 전체 국가 예방 접종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접종 유보 여부를 결정하지 않도록 안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3일부터 병·의원 3만5000곳에 접종 중단을 권고한 대한의사협회는 이 방침을 계속 유지하기로 해 백신 접종을 지속한다는 정부 방침과 엇박자가 계속될 전망이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의료기관을 찾은 시민들이 출입문에 붙은 ‘예방접종 중지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이에 앞서 22일 영등포구는 관내 모든 의료기관에 독감 예방접종을 보류해달라고 권고했다. /뉴시스

“사망자 평균 75세, 주요死因 뇌·심혈관질환”

질병관리청이 독감 백신 접종을 지속하기로 한 까닭은 36건(23일 오후 10시 기준)의 독감 백신 관련 사망 의심 신고 중 이날까지 분석된 26건에서 백신이 사망 원인이라 볼 만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26명 중 독감 백신 부작용 증상 ‘0’

질병청과 예방접종피해조사반은 먼저 사망자 26명에 대해 백신 부작용 의심 증상이 있었는지, 다른 지병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부검과 의무기록조사 등을 통해 살폈다. 독감 예방접종 후 나타나는 중증 이상반응으로는 24시간 내에 나타나는 아나필락시스 등 백신 관련 이상반응으로 사망이 의심되는 사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검에선 “현재까지 추가 조사 중인 7명을 빼고 13명의 분명한 사인이 밝혀졌다”고 질병청 관계자는 말했다. 8명은 심혈관계질환, 2명은 뇌혈관계질환으로 숨졌고 3명은 기타로 분류됐다. 부검이 이뤄지지 않은 6명도 질병사(3명) 질식사(1명) 기타(2명) 등으로 확인됐다.

사인별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의심 신고가 들어온 전체 사망자 36명의 평균연령도 74.9세로 고령층 위주였다. 백신에 문제가 있었다면 특정 연령층에 사망자가 몰리지 않을 것이란 기존 의료계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질병청은 그간 일관되게 “독감 백신 접종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고, 고령 어르신과 어린이, 임신부 등 독감 위험군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을 때 합병증 피해가 클 수 있다”며 독감 예방 접종 사업을 일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날까지 역학조사 결과를 봤을 때 이를 뒤집을 만한 과학적 팩트가 없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백신 때문이란 근거 나와야 중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2일 국감에서 “같은 제조번호(로트번호)의 백신 접종 사망자가 추가되면 해당 백신 접종을 중단하고 품질을 살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질병청은 이날 “같은 제조번호에서 예방접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의심이 드는 경우가 2건 이상 나올 때 사용중지를 검토하겠다”고 해당 발언을 정정했다. 같은 제조번호 백신을 맞은 사람이 2명 이상 나오더라도 백신 때문에 숨졌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면 해당 제조번호 백신 사용중단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날까지 같은 제조번호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례는 최소 4쌍 8명이 나왔지만 모두 백신이 사망 원인이 아닌 것으로 질병청은 보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에 대한 종합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4일 예정된 예방접종전문위원회에선 보다 안전한 예방접종 실시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서울의대 교수)는 “하루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하고, 접종자의 몸 상태를 충분히 점검한 뒤 예방 접종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 등이 검토될 것”이라고 했다.

보건 당국은 과학적으로 백신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의심 사망 신고 사례가 속출하면서 국민들의 우려는 고조된 상황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지난 21일 백신을 맞고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렸다”며 “의료계와 보건 당국이 앞장서서 예방접종 인증샷을 보여주는 것도 국민 우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