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조모(31)씨는 27일 서울 중구 T호텔로 거처를 옮긴다. 회사 사무실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3성급 호텔이다. 한 달 숙박료는 66만원. 하루 2만원 남짓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집에서 서울 도심까지 왕복 2시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호텔 헬스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조씨는 “객실에 조리 시설이 없지만, 호텔 지하 휴게실에서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워 먹거나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빨래는 호텔에 있는 동전 세탁기로 해결할 계획이다. 청소는 매주 한 차례 정도 해 준다고 한다. 조씨는 “최근 전셋집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며 “한 달 단위로 단기 임대가 가능한 호텔 ‘장박’(장기 숙박)은 보증금이나 관리비가 따로 없고, 월세도 크게 부담되지 않은 수준이라 꼭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서울 도심 호텔에서 한 달 이상 생활하는 ‘호텔 월세족(族)’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며 공실(空室)에 허덕이던 명동과 홍대, 강남 지역에 있는 호텔과 호스텔이 저렴한 가격에 장기 숙박 상품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재택근무에 지루함을 느끼던 20~30대 직장인들은 “이참에 호텔에서 한번 살아보자”며 짐을 쌌다.

저렴한 가격대 호스텔의 경우 한 달 45만~65만원 수준이다. 호텔은 등급에 따라 70만~2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지역 여관 평균 숙박료는 4만2692원. 월세 60만원짜리 객실이라면 여관 숙박료 절반 가격에 호텔 생활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 중구에서 ‘필스테이 명동 스테이션’을 운영하는 문정호(47)씨는 지난해 6월부터 한 달 단위 장기 숙박객만 받고 있다. 코로나로 전체 이용객의 95%를 차지하던 외국인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문씨는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혼자 운영할 방법을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라며 “1~2인 객실 21곳을 45만~60만원에 내놨다”고 말했다. 서울 글래드호텔 관계자는 “제주지점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호텔로 직접 예약한 손님 중 장기 투숙자 비율이 지난해 11월 4%에서 12월 25%로 뛰더니, 지난달에는 39%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한 달 살기’ 전용 상품을 내놓는 호텔도 늘고 있다. 장기 숙박 호텔을 소개하는 예약 플랫폼도 생겼다. ‘호텔에삶’을 운영하는 트레블메이커스 김병주 대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만에 호텔 40여 곳이 등록했다”며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하루 1000~2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