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는지 전혀 몰랐어요. 경찰들이 오고서야 그분이 살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3일 오후 늦게 찾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고(故) 변희수(23) 전 하사의 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이 말했다.

성 전환 수술 후 강제 전역 조치된 변 전 하사는 지난해 1월 가족이 있는 청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 떨어져 원룸형 아파트를 얻어 홀로 생활해 왔다. 이웃들은 그가 이곳에 살았는지 대부분 몰랐다고 한다. 간혹 마주친 주민들도 변 전 하사가 뉴스에 나온 군인인지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우리도 전혀 몰랐고, 관심도 가져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젊은 사람이 너무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일에 숨진채 발견

변 전 하사는 지난 3일 오후 5시49분쯤 청주시 상당구의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자택 현관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붙여져 있다./뉴시스

이날은 청주상당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변 전 하사의 상담일이었다. 이날 담당자가 변 전 하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군 인권센터에서도 ‘지난달 28일 이후 변 전 하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센터 측은 같은 날 오후 5시40분쯤 변 전 하사의 자택을 찾아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이 굳게 잠긴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들어갔을 때 변 전 하사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이불을 덮은 채 숨져 있었다고 한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방안에는 보일러가 가동되고 있었고, 매트리스 위 온열 매트도 켜져 있어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고, 외상도 없었다.

청주상당경찰서는 변 전 하사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은 5일 오전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 “지난 11월에도 설득해 잘 넘겼는데…”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변 전 하사는 지난해 11월 중순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충북 청주상당경찰서 전경/청주상당경찰서

당시 경찰은 밤새 변 하사를 설득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경찰은 이후 청주상당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하여 변 하사를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 조처했다. 수개월간 치료를 이어오던 변 하사는 최근 퇴원해 홀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청주상당정신복지센터는 모 기관의 의뢰를 받아 2월 19일 변 전 하사와 첫 대면 상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센터 측은 지속적인 상담·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 2회 상담 진행을 결정했다. 이는 변 전 하사도 동의했다고 한다. 이후 센터 측은 22일과 24일 두 차례 변 전 하사와 전화상담을 진행했다. 변 전 하사가 발견된 3일에도 전화 상담이 예정돼 있었지만, 변 전 하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상담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변 전 하사는 센터에 정식으로 등록된 회원이 아니라서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며 “자세한 상담 내용은 알려줄 수 없지만, 상담을 통해 심리적 위로나 용기, 희망을 전하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변희수 하사, 평안하세요'…애도 물결

4일 오전 출입이 통제된 전 하사의 집 앞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부의 봉투와 소주 1병이 놓였다. 봉투 겉면에는 ‘변희수 하사, 평안하세요’, ‘부디 하나님의 평안…’ 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성전환 후 전역 조치된 변희수(23) 전 하사가 지난 3일 청주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4일 오전 변 전 하사가 거주한 현관문 앞에 놓인 술병과 부의 봉투. /연합뉴스

변 하사의 기사에도 그를 애도하는 댓글이 달렸다. 한 네티즌은 “변 전 하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며 “부디 다음 생에는 본인이 바라던 여성으로 꿈을 이루길”이라고 적었다.

사회단체도 성명을 내 변 전 하사의 죽음을 애도했다.

4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등으로 구성된 ’113주면 3.8 세계 여성의날 투쟁 충북기획단'은 이날 성명을 통해 “변 전 하사의 죽음은 혐오와 차별에 의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이젠 어디에나 있는 성 소수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를 기억하며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여성의 전화 등 21개 시민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제정 충북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 “성 소수자들은 혐오와 차별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변변한 법과 제도 하나 갖지 못했다”며 “차별이 심화하고 혐오가 확대되는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국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면, 복무할 수 있는 세상 만들고파.”

변 전 하사는 강제 전역조치 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하나만 있으면 복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강제 전역 처분을 받은 변희수 전 육군 하사/연합뉴스

그는 경기 북부 육군 부대에서 복무하던 2019년 11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군은 그를 ‘심신장애 3급’으로 분류하고 지난해 1월 강제 전역 조치했다.

같은 해 2월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허가를 받은 변 전 하사는 군에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며 다시 심사해달라는 인사소청을 제기했다. 군이 “전역 처분의 위법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기각하자, 변 전 하사는 대전지법에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다. 그는 다음 달 15일 이 소송 첫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