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윤리위원회(위원장 손봉호)는 28일 조선닷컴에서 조국씨 부녀 일러스트 등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문제를 놓고 회의를 열어 상세한 경위 설명, 책임 소재 규명 및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조선일보에 권고했다. 윤리위원회는 “조선일보 디지털 시스템 확장 과정에서 허점이 다수 드러났다”며 “이번 일을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 독자들에게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장인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김근상 성공회 주교,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와 안덕기 조선일보 부국장, 김인원 노조위원장 등 6명이 참석했다. 조선일보는 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각각의 항목에 대한 해명과 대책을 마련하고, 지면에 소개한다.

  1. 조국 부녀 일러스트 게재 관련 경위

①일러스트 게재 과정

조선일보 사회부 대구취재본부 이ΟΟ 기자는 지난 20일 오후 3시 54분쯤 ‘“먼저 씻으세요” 성매매 유인해 지갑 턴 3인조’ 제하의 기사를 작성했다. 20대 여성 1명과 남성 2명으로 이뤄진 3인조 혼성 절도단이 18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시도한 남성들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대구지법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다. 본지 21일 자 A12면에 나온 2단짜리 기사는 신문에는 일러스트 없이 게재됐다. 21일 오전 5시 이 기사가 조선닷컴 홈페이지에 올라갈 당시에도 일러스트는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지면에 텍스트만 나간 기사가 그대로 온라인에 게재되면 주목도가 떨어지고, 잘 노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자들이 나중에 관련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덧붙일 때가 종종 있다. 이 기자도 같은 이유로 나중에 일러스트를 붙였다고 했다.

이 기자는 먼저 기사에 나오는 3인조 혼성 절도단을 연상시키는 일러스트를 찾기 위해 조선일보 디지털 미디어 운영 시스템을 검색했다. ‘3인조’ ‘혼성’ ‘절도’ 등 단어를 입력했지만 적당한 일러스트를 찾지 못했다. 그는 검색어로 ‘일러스트’를 입력해 400여개를 차례대로 살펴보던 중 해당 일러스트를 발견했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 일러스트를 추가한 시각은 21일 오전 6시 27분쯤이었다. 이 기자는 “기사와 일러스트 속 남녀 숫자가 비슷해 이미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러스트를 삽입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의 일러스트는 지난 2월 27일 자 본지 아무튼주말 섹션의 ‘서민의 문파타파’ 기고문에 사용된 것이었다. 이 일러스트에는 ‘조민 추적은 스토킹이 아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기자는 이런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기사와 관련 없는 일러스트를 추가한 것이다. 이 기자도 “검색 당시 그림 속 인물이 조국씨와 딸 조민씨를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확인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조선닷컴의 디지털 제작 시스템은 일선 기자가 기사를 수정하고, 사진이나 일러스트도 직접 삽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일러스트를 넣은 뒤 ‘게시하기’를 클릭하면 인터넷 기사에 즉시 반영된다. 따라서 일러스트 등 삽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②'일러스트 논란' 언제 처음 알았나

문제의 일러스트를 추가하고 2시간 30여분이 지난 21일 오전 9시쯤 이 기자는 본지 동료 기자로부터 “기사에 붙인 일러스트가 조국, 조민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바로 5만원권 지폐를 지갑에서 빼가는 ‘금품 사기’ 일러스트로 교체했다. 이날 오후 4시 19분쯤에는 다른 동료 기자가 본지 페이스북에 (문제의) 일러스트가 바뀌지 않은 해당 기사 링크가 게시됐다는 이야기를 이 기자에게 전했다. 이 기자는 이때까지 페이스북에 기사 링크가 게시된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이 기자는 담당자를 찾아 오후 4시 30분쯤 해당 기사 링크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본지 페이스북은 SNS 담당자를 따로 지정해 조선닷컴 주요 기사를 선별, SNS에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기자는 기사 일러스트 교체와 SNS 링크 삭제 사실을 담당 데스크나 회사 측에 바로 보고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논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일러스트를 교체한 지 이틀이 지난 23일 이 기자는 오전 6시쯤 이메일을 확인하다 욕설이 섞인 제목의 메일 3~4통을 봤다. 그는 “이메일 내용 중 ‘조국, 조민’이란 단어가 있어 조국씨 페이스북을 확인했고, 이 일러스트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기자는 일러스트 교체 후 46시간쯤 지난 뒤인 이날 오전 7시 37분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에서 해당 사항에 대한 내용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 이후 사건 경위를 담은 1차 보고서를 작성해 오전 8시 52분쯤 담당 데스크에게 제출했다. 이 기자는 “(항의)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 외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줄 몰랐다”며 “이전에도 일러스트를 교체한 적이 있었지만 따로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48시간 동안 사회부 담당 데스크는 일러스트 교체와 문제 발생 사실을 몰랐다. 취재 데스크와 디지털 콘텐츠 책임자들이 온라인 기사에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온라인 관리·감독 시스템 상의 결함이 확인됐다.

③다른 일러스트 논란

이 문제가 불거진 후 조선닷컴은 이 기자가 과거에 쓴 기사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확인했다. 조사 결과, 지난해 2건의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일러스트를 사용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동충하초 설명회서 확진 안된 딱 한 명, 행사 내내 KF94 마스크 벗지 않았다’(2020년 9월 16일), ‘산속에서 3000여명 모임 의혹, 인터콥 경찰 고발됐다’(2020년 10월 13일) 등의 온라인 기사다.

두 기사에 사용된 일러스트는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서 있는 모습으로, 지난해 본지 3월 4일 자에 게재된 칼럼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문재인 대통령과 거리 두기’에 사용된 것이다.

이 기자는 “기사는 동충하초 사업 설명회 모임 중 홀로 마스크를 쓰는 등 방역 수칙을 지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은 한 상주 시민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군중 속 홀로 마스크를 쓴 남성 모습이 기사에 적합하다고 봤다”며 “일러스트가 문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에 있던 일러스트에는 ‘코로나 마스크 일러스트’라는 간략한 설명만 붙어 있었다. 조선닷컴은 해당 기사에 삽입된 일러스트를 모두 삭제했다.

사회부 호남취재본부 김ΟΟ 기자가 ‘간 큰 공장장 가짜 마스크 7000장 경찰에 팔아’(2020년 8월 10일) ‘”마스크 팔아주겠다” 2억 가로채’(2021년 2월 15일) 등 두 건의 온라인 기사에 같은 일러스트를 사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기사에 붙인 일러스트는 삭제됐다. 김 기자는 “일러스트 제목과 설명에 ‘코로나 마스크 일러스트’라는 문구 밖에 없어, 이것이 문 대통령을 형상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④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조선닷컴은 사건 경위를 1차 파악한 뒤 23일 오전 11시 50분 ‘조국씨 부녀와 독자들께 사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담당 기자가 일러스트 목록에서 여성 1명, 남성 3명이 등장하는 이미지만 보고 기고문 내용은 모른 채 이를 싣는 실수를 했고, 이에 대한 관리 감독도 소홀했다’며 ‘조국씨 부녀와 독자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24일 오후 3시 58분에는 ‘부적절한 일러스트 사용 사과 드립니다.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라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해당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러스트를 사용해서 혼란과 오해를 드린 점 사과 드리며, 일러스트와 사진, 그래픽 등이 부적절하게 사용되었는지 계속 조사해 바로잡고, 앞으로 철저히 관리해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언론윤리를 위반했다는 윤리위의 권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조국씨 부녀와 문재인 대통령, 독자 여러분께 다시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독자들께 더 신뢰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리위, 규정위반 관련 책임소재 규명 요청]

윤리위원회는 문제가 된 부적절한 일러스트 사용이 조선일보 윤리규범 제11장 3조 1항(과거에 촬영한 자료 사진이나 영상을 사용할 경우 과거 이미지임을 표시한다)과 2항(과거에 촬영한 자료 사진이나 영상을 당사자에게 불명예스러운 자료 화면으로 이용하지 않는다)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윤리위는 해당 윤리 규정 위반에 대해 책임 소재 규명을 조선일보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는 조만간 징계위원회를 열어 책임 소재를 밝히고, 이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