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사망한 경기 김포시의 한 택배대리점 사장 이모씨 곁에 남아 있던 편지 2장 중 1장/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30일 경기도 김포에서 택배 대리점을 운영해온 40대 대리점 사장 이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이씨는 사망 현장에 A4지 2장에 걸쳐 직접 쓴 편지를 남겼다. 편지엔 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에 대한 원망이 담겼다. 조합원들을 향해 “너희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불법 태업과 업무방해… 지옥 같았다”

31일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는 “이씨 사망 현장에 남겨진 편지”라며 해당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에서 이씨는 “대한통운 시절 열악한 환경 속 밤새어가며 일을 했고, 합병 전 대리점을 차리게 되어 소수로 시작해 늘어나는 신도시 구역과 업체를 관리해오며 올해 3번째 분구(구역을 나눔) 계획을 진행하다 구성원과의 의견 차이로 결렬됐다”며 “그들의 선택은 노조였다”고 했다.

그는 “노조에 가입하면 소장을 무너뜨리고 대리점을 흡수해 파멸시킬 수 있다는 뜬소문, 헛소문이 점점 압박해 왔다”며 “처음 경험해본 노조원들의 불법 태업과 쟁의권도 없는 그들의 쟁의 활동보다 더한 업무방해, 파업이 종료되었어도 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통보에 비노조원들과 버티는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았다”고 적었다.

이씨는 “지쳐가는 몸을 추스르며 마음 단단히 먹고 다시 좋은 날이 있겠지 버텨보려 했지만 그들의 집단 괴롭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태업에 우울증이 극에 달해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며 “저는 더는 버틸 수가 없다.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30일 사망한 경기 김포시의 한 택배대리점 사장 이모씨 곁에 남아 있던 편지의 일부. /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그는 자기 죽음이 노조원들이 원하는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울하다면서도 “너희들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단 걸 잊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지속적인 괴롭힘과 공격적인 언행은 이를 겪는 한 사람에겐 정신적 고통과 상실감, 괴리감, 우울증, 대인기피증까지 오게 했다”며 “노조 지회장과 그 소속 대리점 여러분은 한 사람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가 너무 힘들다… 이기적 결정 미안”

이씨는 자신을 도와줬던 이들에게는 “너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날 끝까지 믿어준 우리 팀 내 비노조원들, 날 아껴준 형들 동료들”을 부르며 “세상에 내가 기억될 수 있다면 보고 싶고, 없음에 허전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편지 끝 부분은 가족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그는 딸과 두 아들을 향해 “너희 때문에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아빠가 너무 힘들다”며 “아빠 없는 아이들, 그게 아빠의 마지막 발목까지 잡았지만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기적인 결정 너무도 미안하다. 너희에게 항상 웃음만을 주려 살아온 아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구나”라며 “너희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데 아빠는 마지막까지 부족하다”고 사과했다. 부인을 향해서도 “내 삶의 시작이자 끝인 한 여자”라며 “못난 남편 만나 이해해주며 살아온 시간, 죽어서도 용서를 구할게. 미안하고 사랑해”라고 글을 남겼다.

◇”점주·기사 같은 사업자인데… 정부, 노조편만 들어 횡포 불렀다”

택배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업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부가 택배기사들에게 노조 설립 자격을 성급하게 부여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2017년 민노총 내 전국택배연대노조는 특수고용직 노조로는 처음으로 ‘노조설립 필증’을 받았다. 그동안 택배기사 노조는 ‘법외노조’로 분류되어 파업 등을 할 수 없었지만, 노조설립필증을 발급받으면서 노조법에 따라 단체협약 체결이나 단체행동이 가능해졌다. 이후 노조원 수는 급격히 늘어 민주노총 산하 2개 조직, 한국노총 산하 1개 조직의 노조원 수를 합치면 8500여 명에 이른다.

대리점주들이 노조 설립 후 어려움을 겪게 된 건 이들의 특수한 고용관계에 있다. 대리점주와 택배기사는 모두 직장인이 아닌 개인사업자다. 위탁용역계약 관계로, 택배기사가 항의의 뜻으로 집단 태업에 돌입해도 대리점주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일한대로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이기에 본인이 돈을 덜 받는 대신 일을 덜 하겠다는 걸 징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대리점주는 “배달기사들이 단체 행동에 돌입해 택배가 늦게 온다고 항의를 받아도 대리점주는 어디에 호소할 곳이 없다. 이를 알게 되자 배달기사들의 집단 괴롭힘 수준이 점점 더 심해졌다”며 “배달기사들은 노동자의 의무는 지키지 않으면서 권리는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는 “그동안 일부 택배 대리점의 미숙한 운영을 전체 대리점의 갑질 프레임을 씌워 왜곡된 뉴스들이 나왔다”며 “갑질은 택배노조가 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민노총 택배노조와 원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개별 택배대리점은 최하위 계층의 또 다른 을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떠한 위로도 유족의 아픔을 달랠 수는 없겠지만,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해당 조합원의 만행을 밝히고 처벌이 내려지도록 변호사 선임 등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전국택배노동조합을 향해서는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집단적 괴롭힘, 인신공격, 폭행, 폭언 등 불법행위를 멈추고 대책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