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시사 관련 계정을 운영하는 ‘구옌무찬’은 중국 청년의 애국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소셜미디어 첫 화면에 올려놓은 고양이 사진만 보면 그는 또래 젊은 중국 여성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640만명의 구독자들은 귀여운 프로필 사진이 아니라 애국주의로 무장한 그의 ‘매운 입’에 열광한다.

/그래픽=김성규

지난해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반도체 공급망 관련 정보를 제공하자 구옌무찬은 “(미국의) 개 노릇을 해온 결과”라고 했다. 삼성을 ‘삼상(三喪)’이라고 비하하며 “미국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팬들도 한국을 ‘개’로 자주 비유한다. 한국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을 지지한다면서도 정부 대표단 파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 기사에 붙은 댓글 중 많은 추천을 받은 건 “개(한국)가 주인(미국)의 말은 듣기 싫은데 주인은 또 무서워하네”였다. “그들(한국)은 개가 되는 것을 좋아해”라는 글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선 ‘중국 충격 영상’과 같은 제목으로 중국의 위생 상태나 중국인의 행동을 조롱하는 영상이 수만~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사람이 중국에 가면 경악하는 것′ ‘중국 관광객의 역대급 민폐사건′과 같은 제목의 영상도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욕설과 함께 “중국 극혐” “중공(中共)은 영원히 하층 민족” 등의 댓글을 다는 경우도 많다.

한국과 중국의 MZ세대(만 20~39세)와 10대 사이에서 상대국에 대한 혐오 정서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 일각에선 한국을 ‘남조선’으로, 한국에선 중국을 중공이라고 비하해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많은 분야에서 밀접하게 교류하는 두 나라의 젊은 세대가 서로를 혐오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양국 미래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본지가 20대(1993~2002년 출생)인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졸업생 30명을 대상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 대만 네 나라에 대한 호감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중국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가장 호감이 많이 가는 정도를 10점이라고 했을 때 중국은 평균 3.83점에 그쳤다. 미국(7.57점)의 절반 수준이었고, 일본(5.73점)과 비교해도 2점 가까이 낮았다.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해외문화홍보원 2020 국가이미지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중국인의 긍정 인식 평균은 69.4%인데 10대는 42.1%로 유난히 낮다.

두 나라 젊은 세대에서 이런 정서가 생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지난해 중국 텐센트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빅데이터로 중국 링링허우(2000년대 이후 출생) 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뽑아본 결과 다른 나라 청년들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애국’ ‘열혈’이란 키워드가 나왔다. 이런 애국주의 성향이 혐한 정서를 강하게 드러내는 이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청년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시진핑 정권하의 중국 청년들은 권위주의적 체제를 옹호하고 있어 서로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한·중 양국이 다양한 영역에서 대립하는 사안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후 중국의 보복,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중국의 미세 먼지 유입 논란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전 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에서 양국의 역사·문화 등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의 폭이 감소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한국은 지금의 40대까지도 삼국지, 홍콩 영화 등을 통해 중화권 문화를 가깝게 접했지만 현재 젊은 세대에게는 그런 연결점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도 6·25전쟁 참전을 ‘정의의 전쟁’으로 부르는 등 자국 중심의 문화와 역사를 강조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미래의 양국 관계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청소년과 유학생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류쉬 중국신문통신사 한국지사장은 “문화 교류 과정을 ‘문화 침투’로 과장해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론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