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광주시 CJ대한통운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 앞을 민주노총 택배노조원들이 가로막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22일 오전 경기 광주시에 있는 CJ대한통운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에는 수도권 각지로 가는 택배 상자를 실은 15t짜리 물류 차량 수십여 대가 출입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줄지어 늘어섰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 120여 명이 이날 오전 7시부터 터미널 진입을 시도하며 차량 진·출입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경찰과 대한통운 보안 요원의 대응으로 조합원들이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4시간가량 택배 차량의 이동이 지연됐다.

CJ대한통운 서울 본사를 13일째 불법 점거하고 있는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22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대한통운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 진입을 시도하며 물류 차량의 통행을 막았다. 전날 본사 1층 로비만 남기고 3층 점거 농성을 해제한 지 하루 만이다. 대한통운 측은 “국민들 앞에서는 대승적 차원으로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처럼 발표해 놓고 뒤에서는 물류센터까지 진입하고 있는 노조의 이중적 행태를 규탄한다”고 했다.

택배노조는 당초 오전 8시부터 200여 명이 모일 예정이라며 집회 신고를 낸 상태였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오전 7시부터 기습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택배노조의 집회로 택배 차량 170여 대가 제때 터미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대한통운 측은 밝혔다. 택배노조는 11시쯤 자진 해산했다.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은 수도권행 택배 대부분이 거쳐가는 곳이다. 면적만 30만㎡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CJ대한통운이 매일 처리하는 물량 700만개 중 250만개 이상이 이곳을 거쳐간다. 전국 각지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택배들은 모두 여기 모았다가 세부 도착지별로 분류해 간선 차량이라 불리는 11~15t 트럭에 실어보낸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이곳이 막히면 사실상 수도권 배송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특히 화요일은 배송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인데 배송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했다.

대한통운 측에 따르면, 이날 노조가 차량 출차를 막아서면서 배송이 지연된 물량은 26만개로 추산된다. 이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물량의 10% 정도가 4시간가량 늦게 배송됐다는 것이다. 곤지암 터미널에서 거리가 먼 경기도 파주의 일부 지역은 배송이 5시간까지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곤지암발 택배가 각 지역 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해당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 택배 기사들 작업 시간도 늦춰졌다. 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파주처럼 곤지암 터미널에서 거리가 먼 지역은 하루를 넘겨 택배 배송이 이뤄질 수 있다”며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택배 기사의 과로를 부추기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택배노조는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에 18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집회 신고를 했다. 이곳 외에도 경기 광주 도척터미널, 김포터미널 등에도 집회 신고를 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성격의 집회가 여러 차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택배노조 측은 “노조는 곤지암 허브터미널 앞에서 대한통운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하였을 뿐 진입 시도를 계획한 사실이 없다”면서 “향후에도 대한통운이 계속 대화를 거부할 경우 곤지암 터미널에서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택배노조는 작년 12월 28일부터 “택배 요금 인상분을 기사들에게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57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일부터는 서울 중구 대한통운 본사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

이날 택배노조 일부 조합원은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도 기습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오후 3시쯤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라가 ‘CJ대한통운은 지금 당장 대화에 나서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친 조합원 4명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파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택배기사 7500여 명이 가입한 ‘택배기사 권리 찾기 전국모임’ 인터넷 게시판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전북지역본부 택배지부장이 “파업의 명분이 없으니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글에서 “택배노조는 지난 수년간 노동자의 목소리가 조합의 목소리와 맞지 않으면 묵살해버리고 탄압하고 외면했다”며 “노동자를 위해 파업을 한다는 명분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또 “시간은 이미 승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진작에 넘었다. 택배노조 조합원과 가족들, 전국의 택배노동자들만 힘들게 할 뿐”이라며 “하루빨리 복귀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의 업무 방해 행위를 금지하고 퇴거를 명령해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서를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전보성)는 23일 심문 기일을 열고 사 측과 노조 측의 입장을 들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