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겁게 사랑할 나이에 가장 맹렬히 미워한다. 나의 불행은 너의 행복 탓이다. 적대의 온도가 “6·25급”이란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젠더 전쟁’, 그 한복판에 선 청년 세대 이야기다.

그림=이철원

국민 10명 중 7명은 우리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대선 직후 공동으로 진행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1786명)의 66.6%가 ‘한국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20대가 79.8%로 가장 높았고, 20대에서도 여성이 82.5%로 가장 크게 동의했다. 지난 대선에서 투표할 후보를 정할 때도 10명 중 4명이 ‘후보의 젠더 공약이 영향을 미쳤다’(40.9%)고 답했다. 20대에서 50.6%로 가장 높았다.

갈등의 최전선은 ‘차별’이다. 20대 남성의 절반 이상(53.6%)은 이미 평등한 세상에서 군대는 왜 남자만 가느냐며 반발했다. 할당제,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 등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고안된 모든 정책 또한 남성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20대 여성의 70.1%는 ‘취업이 남성에게 유리하다’며 구조화된 성차별에 분노했다. 일과 자유를 구속한다면 결혼·출산·육아를 보이콧하겠다고도 했다.

디지털로 무장한 이들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치 세력화하는 중이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당선시킨 20대 남성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보수당 후보 공약으로 관철시켰다. 20대 여성들은 대선을 2~3일 앞두고 결집했다. “이재명도 싫지만 여가부 폐지 등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아예 지우려는 윤석열은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빠르게 확산시키며 두 후보 득표 차를 ‘0.73% 포인트’로 좁히는 위력을 과시했다.

한국 사회 젠더갈등에 대해 외신들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놀랐다. 니콜라스 로카 프랑스 공영 RFI 라디오 특파원은 “한국에선 중·장년층보다 젊은 세대의 젠더 갈등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 유럽 독자들에겐 놀라운(mind-blowing) 현상”이라고 했다.

20대 남녀 갈등의 이면엔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병증(病症)이 응축돼 있다. 저성장 시대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며 급감한 일자리와 증폭된 고용 불안은 “1mm의 차별, 1mm의 양보도 용납할 수 없다”며 남녀를 서로의 생존 경쟁자로 지목하게 했다. 양극화, 연공제로 대표되는 세대 간 불평등 역시 청년 고용을 축소시키며 파이를 둘러싼 젠더 갈등을 심화했다. 공감·배려 대신 승자 독식을 가르치는 입시 위주 교육 현장은 혐오가 싹트기 좋은 환경으로 전락했다. 호주제는 폐지됐으나 ‘남성은 여전히 1차 생계 부양자’라는 가부장 문화도 젠더 갈등의 진원지다. 여성도 구시대 고통을 답습한다. 50대 엄마가 겪던 경력 단절을 20대 딸도 겪는다. OECD 꼴찌인 0.81명의 출산률마저 제로(0)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나 위기는 늘 기회였다. 20대 남녀의 절규는 대한민국의 교육, 복지, 고용, 저출산 정책 전반에 ‘새 틀 짜기’를 요구한다. 불평등, 불공정을 바로잡고 계층·성별·세대 간 증오를 이해와 관용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임을 일깨운다. 분단이 낳은 편 가르기 악습을 포용의 문화로 바꿔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2 다시 쓰는 젠더 리포트’는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이 벌어지는 현장을 진단하고 좌우, 세대, 계층, 성별을 망라한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젠더 최전선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유튜버들이 선동·왜곡하고 증폭시켜온 가짜 뉴스들을 걸러내는 데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