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를 엿새 앞둔 3월 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2번남’과 ‘1번남’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확산했다. 2번남은 기호 2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하는 20·30대 남성을 가리키는 말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은 2번남을 ‘젊은 꼰대’ ‘한남충(한국 남성 벌레)’ 등으로 정의했다.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2번남을 위한 명상’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1번을 선택하면 많은 여자가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남녀 갈등은 이제 정치권이 득표를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소재가 됐다. 이 과정에서 남녀 갈등은 더 부추겨지고 더 선명해진다. 정치권의 ‘남녀 갈라치기’는 20대 남녀의 정치 성향이 상반된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2018년 시작됐다. 20대 남성의 문재인 당시 대통령 지지율이 낮게 나오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그해 12월 한 강연에서 20대 남성들에 대해 “자기들은 축구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자기들은 롤(게임)도 해야 되는데 여자들은 공부한다”며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표현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낮은 것에 대해 “이분들이 학교 교육을 받았을 때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가 ‘여성 우대 정책’을 펼치면서 남녀를 분열시켰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그해 5월 당대표 선거에 나선 이준석은 “최근 논의되는 할당제 등은 기존의 ‘파이’를 여성과 남성이 나누는 것이라 상당한 불공정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20대 남성의 표심을 겨냥했다.

대선에선 여야 모두 남녀 갈등을 득표 수단으로 이용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여성가족부를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부처로 지목하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20·30대 남성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유승민·하태경 후보는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면서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을 폈다. 윤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을 냈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도 했다. 영국 로이터는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여가부 폐지 공약을 “한국의 젠더 전쟁을 선거 공약으로 이용하겠다는 결정”이었다고 평했다.

반면 민주당은 여성을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국민의힘을 남성 입장에서 갈라치기하는 세력으로 지목하고 공세를 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작년 9월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남녀 관계도 일종의 계급”이라며 ‘노동과 자본의 관계’로 비유했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공유하는가 하면, 페미니즘 성향 인터넷 매체 ‘닷페이스’와 인터뷰하기로 했다가 한때 보류하는 등 모호한 입장을 보여 비판받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대선에 대해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주의적 백래시(반동)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차인순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30대는 성평등 의식이 높아진 세대인데 정치권이 이들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했다. 영국 더타임스 기자였던 마이클 브린 전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은 “정치인들은 젠더 이슈가 ‘장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했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정치가 남녀 감정 싸움을 이용해 상처를 낼 게 아니라 치유해야 한다”며 “젠더 갈등을 세대 간 대타협 문제로 바꿔 논의하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