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11살 북한 소녀가 유튜브에 등장했다.

지난 7일 유튜브 ‘Sary Voline [송아 SongA Vlog]’ 채널에는 한 소녀가 브이로그(일상 비디오) 형식으로 진행하는 4분 남짓 길이의 영상이 올라왔다. 자신을 평양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생 송아라고 밝힌 소녀는 북한에 위치한 ‘옥류아동병원’을 소개했다. 송아는 영상에서 북한 말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직 영국식 영어만 구사했다. 자막도 영어로만 제공된다.

셀카봉을 든 채 병원 내부를 둘러보는 송아. /유튜브 'Sary Voline [송아 SongA Vlog]'

송아는 셀프 카메라로 옥류아동병원의 전경을 비춘 채 “발가락에 티눈이 생겨 병원에 오게됐다”고 밝혔다. 이어 “근처 병원에 갈 수도 있었지만, 옥류아동병원에 오고 싶어 엄마에게 애원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며 “사실은 치료받는 것 보다는 병원에 있는 그림을 보고싶어서 왔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송아는 병원 내부에 그려져 있는 ‘소년장수’ ‘령리한(영리한) 너구리’ 등의 북한 만화를 소개하며 “세계 유명 만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게 내가 옥류아동병원에 오고자 했던 이유”라고 했다. 만화 명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앞에 있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모습도 보였다.

옥류아동병원을 소개하는 송아./ 유튜브 'Sary Voline [송아 SongA Vlog]'

송아는 병원에 대해 “이곳은 아이들과 간호사, 그리고 의사가 사는 궁전 같다”며 “이제껏 궁전은 왕과 왕비가 노래 부르고 춤추며 사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환자를 위한 궁전”이라고 말했다. 송아는 “아이들이 병원에 왜 왔는지는 잊은 채 벽에 그려진 만화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며 “병원 내부에는 이런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원도 있다”고 했다. 장기 입원환자를 위한 학습실도 있다고 소개했다.

송아를 따로 촬영해주는 사람도 있다. 해당 인물은 송아가 의사 선생님께 진찰받는 모습, 휴대폰 카메라를 든 채 병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모습 등을 영상에 담았다. 송아는 “이 병원에서 온종일 놀고 싶다. 발가락 통증도 잊게 됐다”고 말하며 영상을 마쳤다.

의사에게 진찰받고 있는 송아. /'Sary Voline [송아 SongA Vlog]'

지난달 9일 올린 2분 남짓 길이의 영상에서 송아는 코로나 자가격리 경험담을 늘어놨다. 송아는 “일주일 전 체온이 39도였다. 다음 날은 상황이 더 심각했고, 엄마도 앓아누웠다”며 “약은 떨어졌고 너무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근데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며 “도대체 누가 올 수 있겠나. 군의관이었다”고 했다. 송아는 “엄마와 나는 너무 좋아서 얼싸안고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우린 군의관들과 형제 같은 사이가 됐다”고 했다.

영상에는 의료인 완장을 찬 남성 두 명이 송아의 집 현관 앞에 서 있는 모습과 집 안에 들어와 약을 건네고 송아 이마를 짚어보는 모습이 담겼다.

북한 군의관이 송아에게 약을 건네주고 있다. /'Sary Voline [송아 SongA Vlog]'

송아는 또 격리하는 동안 친구와 이웃이 각각 딸기와 만두를 문 앞에 가져다줬고, 동네 야채 가게 직원이 2~3일마다 한 번씩 신선한 야채를 가져왔다며 “이처럼 모든 것이 예전처럼 잘 관리되고 있고, 모두가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나처럼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 팬데믹이 끝날 날이 곧 올 것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힘내라”며 영상을 마쳤다.

'Sary Voline [송아 SongA Vlog]'

영상을 접한 한국 네티즌들은 연출된 영상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완벽한 각본, 완벽한 연출이다” “누가 영상을 보고 ‘북한도 살기 좋구나’ 생각하냐, 그냥 금수저 자식 이용해 먹는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재능있게 태어난 게 불쌍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북한은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영상을 송아 본인이 올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북한의 체제 선전을 위한 영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5일 조선닷컴에 “북한은 ‘극장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선전과 선동을 통한 체제 유지가 중요하다”며 “아마 현대화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이유를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특히 유튜브 영상은 자국민 시청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자신들의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외적인 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은 최근 체제홍보를 위해 미디어 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3월25일 조선중앙TV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긴박한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이 깔리고 격납고 문이 열리자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김정은을 필두로 관계자들이 등장했다. 이어 김정은이 손목시계로 시간을 살피고 어딘가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동형 발사대에 실린 미사일이 나타났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