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강남권에 내린 폭우로 “수 년간 쌓아온 연구 성과가 날아갔다”는 서울대 교수와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대가 있는 관악구에는 그날 시간당 60mm의 비가 쏟아졌다. 당시 캠퍼스에서는 기숙사 일부와 연구실과 강의실 등이 물에 잠겼는데, 최근까지 복구 작업을 하면서 건물 피해뿐만 아니라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 데이터가 저장된 컴퓨터나 실험 장비 등이 물에 잠기는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들이 잇따르는 중이다.

언제 다 복구하나 -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12동에서 직원들이 각종 장비를 이용해 지난 8일 폭우 때 건물에 들어찬 물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당시 폭우로 서울대는 강의실과 연구실, 기숙사 곳곳이 침수돼 이날도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김지호 기자

신효필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의 경우 5년간 컴퓨터에 모아온 연구 데이터를 잃을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고 했다. 8일 비로 서울대 인문대학 5동 1층 서버실도 성인 무릎 언저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이때 신 교수가 쓰던 서버(중앙 컴퓨터)가 물에 잠긴 것이다. 신 교수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한국어 학습 모델을 개발하는 연구를 해왔는데, 물에 잠긴 서버에는 이 연구와 관련한 데이터, 그가 지도하는 석·박사 학생들이 학위 논문을 쓰려고 모아둔 자료, 다음 학기 강의 자료 등 수십TB(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데이터가 들었다고 한다. 1TB는 보통 문서로 650만장, 2시간짜리 영화 250편을 저장할 수 있는 분량이다. 신 교수는 “서버에 든 데이터 복구가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지금 ‘패닉(공황) 상태’”라고 했다. 서버를 새로 구입하는 등 예전과 똑같은 장비를 갖추는 데만 2억5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2022년 8월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12동에서 관계자들이 침수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연구실이 통째로 물에 휩쓸린 경우도 있다. 유준화 화학교육과 교수와 산하 대학원생·연구원 4명이 사용하는 사범대학 12동 1층 실험실에는 당시 빗물이 유리벽을 깨고 성인 가슴 높이까지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실험실에 있던 2억원짜리 형광분석기와 1억원짜리 형광 역상현미경이 물에 잠겨 망가졌다. 캐비닛 안에 보관해뒀던 연구용 재료들도 사라져버렸다. 피해 규모가 총 10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유 교수는 “빗물이 빠지고 보니 연구실에 있어야 할 기기들이 수십m 떨어진 건물 로비까지 쓸려나오는 등 멀쩡하게 남아 있는 장비가 거의 없다”고 했다.

강의실 복구에 시간이 걸리는 탓에 다음 학기를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한 단과대도 있다. 서울대 사범대학은 지난 12일 2학기 수업 일부를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한다고 공지했다. 건물 1~2층에 있던 강의실이 허리까지 물에 잠겨, 교탁과 의자 등이 망가졌다. 강준호 사범대학장은 “강의실 복구가 개강 때까지 어려워 보여 최소 전공 수업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22년 8월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관계자들이 침수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서울대가 관악산을 끼고 있어 지대가 주변보다 높은 편인데 큰 침수 피해가 생긴 것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도 많다. 학교 측은 피해 복구가 우선이라며 아직 침수 원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진 않았다. 학교 안팎에서는 장기간 학교 건물과 각종 시설이 우후죽순 개발된 탓에 물이 빠져나갈 길이 막힌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학교 건물이나 시설이 노후화해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서울대가 있는 관악구 옆인 동작구도 당시 폭우가 내렸는데, 동작구에 있는 숭실대와 중앙대는 건물 지하가 침수되고 천장에서 물이 새긴 했지만 서울대와 비교해선 현재까지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