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사격장에서 한 경찰관이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 /서울경찰청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시내 한 지구대를 찾았다가 “경찰마다 전용 권총을 보급하라”고 말한 후 경찰이 200억원 안팎을 들여 ‘1인 1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17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2018~2021년 전국에서 경찰이 실제 권총을 사용한 것은 연 평균 6번에 그친다. 올해 1~8월은 단 2번 썼다. 일선 경찰 사이에서도 “막상 총을 줘도 실전에선 제대로 쓰지 못할 텐데 세금만 낭비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취임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9월 1인 1총 정책에 예산을 38억5000만원 편성했다. 향후 5년간 매년 권총을 5000정, 총 200억원 안팎 예산을 들여 지구대·파출소 등에서 일하는 경찰 약 5만명 전원에게 총을 지급하겠다는 게 윤 청장의 목표다. 기존 38구경 권총뿐만 아니라 좀 더 비싸지만 살상력을 낮춘 ‘저위험 권총’도 늘릴 방침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 앞서 물을 마시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현재 지구대와 파출소 등 일선 현장에서 보유한 권총은 1만6300정 정도이며, 우선 이달 말까지 2만5000정이 되도록 추가 배분할 예정이다. 보통 2인 1조로 일하는데 한 사람은 권총을, 다른 한 사람은 전자 충격기(테이저건)을 갖고 순찰을 돈다고 한다.

하지만 일선 경찰 사이에서는 대통령 눈치를 본 전형적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총기를 썼다가 문제가 됐을 때 당사자 책임이 지나치게 커 현장에선 총기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15년째 경찰로 근무하는 A(40) 경감은 “경찰관이 송사에 휘말리면 업무는커녕 사생활도 피폐해지는 일이 많다”며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할 거면 문제가 생겼을 때 확실하게 법적 대응 등 뒷받침을 해줄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테이저건으로도 총기를 사용하는 것만큼 충분히 효과를 보고 있다는 반응도 많다. 실제 테이저건은 총과 달리 작년까지 최근 4년간 연평균 316회 사용하는 등 현장에서도 익숙하게 여기고 있다. B(38) 경위는 “용의자가 흉기를 들고 있더라도 테이저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응한다”며 “아무리 총을 다 나눠줘도 위급 상황에서 테이저건 대신 총을 쓰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 전부터 총기 보급을 늘릴 계획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훈련 때와 실전에서 쓰는 총이 다른데, 총기 보급을 늘려서 자기 총으로 훈련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만 경찰은 현장에서 2인 1조로 근무할 때 1명만 총기를 휴대하는 방식은 지금처럼 유지할 계획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천 흉기 난동 부실 대응 사건 등을 보면 현장 경찰의 상황 판단 등에 문제가 있지 총기를 늘린다고 해서 대응력이 높아지진 않는다”면서 “총 보급을 늘리기보다 적절한 교육과 총을 적법하게 썼을 때 현장 경찰에 대한 지나친 사후 감찰과 보고 체계를 간소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38권총의 사용빈도는 낮지만 권총을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 태세는 반드시 갖추자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라며 “또 총기 사용으로 인한 경찰관 감찰 징계도 최근 3년 동안에는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