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TV BJ 배지터가 시민들과 함께 사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 올리고 있다./유튜브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303명(154명 사망, 149명 부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현장에서 구사일생한 생존자들의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손을 잡고 골목에서 빼내 준 ‘의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도움을 받아 구조된 뒤 함께 구조에 동참한 아프리카TV BJ 사연이 전해지기도 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시민들의 이태원 압사 사고 추모 공간에서 한 남성이 이태원 희생자 추모를 위한 플루트 연주를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31일 아프리카TV, 유튜브 등 영상에 따르면 배지터는 전날(29일) 생방송에서 이태원에 방문했다가 압사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배지터는 사고가 난 해당 골목에 진입한 뒤 인파 틈에 섞여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한순간 사람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골목엔 비명이 가득 찼고 사람들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미 중심을 잃고 밀린 사람들은 “뒤로! 뒤로!” “밀지마”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뒤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겹겹이 포개진 상태였고, 정신을 잃은 사람들도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배지터는 길가에 있는 상점 쪽으로 몸을 틀었다. 곧 난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구출을 요청해 가까스로 구출됐다. 벽에 기대 앉아 잠시 숨을 돌린 BJ는 한동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지난 29일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아프리카TV BJ 배지터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명만 더(구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유튜브

숨을 돌린 배지터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과 함께 구조에 동참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 서로 끼어 있는 사람들을 위쪽으로 끌어 올렸다. 난간에도 점차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하자 한 남성은 “올리지 마요. 이제 못 올라와”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여성도 “못 올라와요”라고 외쳤다.

이들의 외침에도 구조가 이어지자 이 남성은 “그만 올리라고”라며 언성 높였다. 배지터는 이 남성을 바라보며 “한명만, 한명만”이라고 부탁했다. 남성은 “위에도 꽉 찼는데 무슨 소리야”라고 화를 낸다. 다른 사람들도 “못올라와요”라고 거들었다. 배지터와 몇몇 사람들은 사람들 반대에도 구출을 이어갔다.

이 같은 BJ 배지터의 행동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커뮤니티 등을 통해 퍼졌다. 네티즌들은 “의인이다”라며 그의 행동에 감사를 표했다.

네티즌들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충격적인 참사였지만 못 구하신 분보다 배지터님께서 구하신 소중한 생명들이 있고, 그걸 기억하는 저희가 있으니 기운 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정신없는 사고 현장에서 한 명만 더 구조하자고 외치며 노력하시던 모습을 봤다. 타고난 인품이 어떤 분인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배지터님 마음에도 상처가 오래 남을 텐데 스스로도 잘 돌보시길 바란다” 등 응원을 보냈다.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가 압사 사고로 인해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들로 가득차 있다. /뉴스1

시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이태원 참사 생존자’라고 소개한 네티즌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고 현장을 빠져나온 경험담을 털어놨다.

한 네티즌은 “지옥이 있다면 거기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도 안나고 가족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사람들이 위에서 손 잡고 올라 오라는데 그렇게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손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살았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진짜 깔려 죽을 거 같아 구멍으로 숨 쉬면서 울었다. 진짜 내가 죽는구나 싶어서 오열하면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 죽어요’ 했다. (난간) 위에 있는 언니 오빠들이 내 손 잡고 끌어올리고 내가 친구 밑에 (있던) 끌어올리고 친구가 밑에 (사람) 끌어올리고 그랬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인근 업소 직원이 시신 수습과 인명 구조를 도운 사연도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직원 A씨는 “시신을 50구는 나른 것 같다”며 “시신들 아래 깔린 한 분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발견해 바닥에서 겨우 꺼내드리기도 했다.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의료진들이 자발적으로 이태원으로 달려와 심폐소생술(CPR)을 도운 일도 속속 전해졌다. 한 국립병원 의사는 ‘블라인드’를 통해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CPR은 할 줄 아니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태원으로 갔다”고 밝혔다. 또 “심폐소생술 가능하신 분 손 들어 달라”는 한 시민의 도움 요청에 시민들이 우르르 달려나가 돕는 영상이 공개되는 등 이태원 참사 현장에 수많은 ‘의인’들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