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에 원금 기준 20억원 규모 펀드를 기부한 권준하(왼쪽)·조강순씨 부부. /숙명여대 제공

서울 강남구에 사는 70대 독지가 부부가 20억원짜리 펀드를 숙명여대에 기부해 화제다. 30여 년간 금융시장에서 활동한 개인 투자자 권준하(78)씨와 부인 조강순(77)씨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지난 4일 아내 조씨의 모교인 숙명여대에 “여성 교육에 힘써달라”며 펀드를 기부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최근까지 공익 기관이나 장학 재단, 학교 등에 잇따라 ‘펀드 기부’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펀드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부 대상 기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언젠가 두 사람이 숨지면 펀드 명의를 해당 기관으로 넘기기로 했다. 예컨대 숙명여대에 기부한 펀드는 한 자산운용사가 만든 사모펀드로, 국내외 주식·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한다.

권씨는 “펀드를 기부하면 원금 손실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수익금이 꾸준히 기부된다”면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복지에 쓸 수 있는 자금이 계속 생겨난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억원짜리 펀드에 연 수익률이 5~6%만 나와도 매년 1억원씩 기부하는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권씨는 공익 기관, 장학 재단 등이 많게는 수백억 원의 자금을 은행에 넣어두는 것을 보고 펀드 기부를 고안했다고 한다. 자산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손실이 날 경우 기부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길게 봐서는 안정적으로 기부를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오랜 기간 투자를 하면서, 펀드의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은행 이자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씨가 펀드 기부를 떠올린 것은 7~8년 전. 하지만 그간 펀드 기부를 선뜻 받아주는 기관이 없었다고 한다. 공익 기관, 장학 재단 등에서 펀드로 기부를 받아본 적이 없을뿐더러 손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권씨는 “손실이 나면 원금을 내가 다시 채워주겠다고 약속한 경우도 있다”면서 “금융 자산에 대해 기관들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펀드 기부가 겨우 성사됐다”고 했다.

두 사람이 올해 기부한 펀드 규모는 원금 기준 65억원에 달한다. 지난 4월 사랑의열매에 30억원 규모의 펀드를 기부했고, 서울대 장학 재단 ‘관악회’와 서울대 상대 동창회 장학회 등에도 모두 합해 15억원 규모의 펀드를 기부했다. 또 사랑의열매 측에는 펀드 기부와 별도로 현금 2억원과 6억원 규모 부동산도 기부했다고 한다.

권씨 부부는 앞으로도 이런 펀드 기부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권씨는 매부(妹夫)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자기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매부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부를 한다’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직접 기부를 해보니 깊이 이해가 됐다”며 “요즘은 어떻게 하면 더 기부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바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