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지난 2일 오후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초등학생이 음주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지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조화가 놓여 있다. /강우량 기자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술을 마신 채 운전하던 30대 남성의 차에 치여 횡단보도를 건너던 9살 초등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운전자 A씨는 사고 당시 현장을 떠나 인근 자택에 주차한 후 약 45초 뒤에 현장으로 돌아왔는데요. 경찰이 처음에 ‘도주 의사는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유가족과 학부모들은 탄원서 4500장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또, 사고가 난 곳은 초등학교 후문 바로 앞인데도 인도가 따로 없었고, 양방통행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점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정말 아홉 살 아이의 비극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요.

◇경찰이 처음에는 ‘민식이법’만 적용하고 소위 ‘뺑소니 운전죄’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민식이법’은 무엇인가요?

이번 사망사건에 한정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5조의13에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데요. 자동차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시속 30㎞ 이내로 운전하고,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할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에게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민식이법’이라고 합니다.

◇그럼 ‘뺑소니 운전죄’는 무엇을 말하고, 이번에 적용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정범죄가중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에선 ‘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뺑소니 운전’이라고 합니다.

도로교통법 제54조에선 교통사고가 난 경우 운전자는 ‘즉시’ 정차해 사상자를 구조하고,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이때 교통사고의 원인을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운전자의 고의, 과실, 적법, 위법을 묻지 않고 교통사고가 나면 ‘무조건’ 그리고 ‘즉시’ 내려 구호조치를 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즉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40초라는 시간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에 ‘뺑소니’가 된 것입니다.

음주로 인해 어린이 충격을 알수 없었기 때문에 도주의 고의가 없다고 한다면, 음주가 뺑소니 운전의 고의 조각하는 정당화 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 용납할수 없습니다.

◇A씨에게 ‘위험운전 치사죄’도 적용됐더라고요. 이건 언제 적용되나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1은 ‘위험운전 등 치사상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음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는데요.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0.08% 이상)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당시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을 음주로 인해 몰랐다는 정황도 엿보입니다. 이 정도면 ‘음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폭이 4m 남짓한 양방향 도로로 차가 오가는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요?

어린이 보호구역은 말 그대로 어린이를 위한 보호구역이 되어야 합니다. 보호란 ‘관심’과 ‘배려’입니다.

학교 측은 2019년 강남구청에 통학로 안전 개선을 위해 인도 설치를 요구했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인도 설치를 위해서는 양방향 도로가 일방통행으로 바뀌어야 했는데, 주민 50명 중 48명이 통행 불편과 과속 위험 등을 이유로 반대한 겁니다. 교통안전시설 등 설치‧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스쿨존 안전시설은 경찰서장이 주민 의견 수렴 결과와 별개로 일방통행 변경 등을 지시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보호를 위해 구청장은 주민을 더 설득했어야 했고, 경찰은 할 수 있었던 행정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와 이념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형량이 확보되었다고 해서 적용할 수 있는 법리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건 법치국가에서 허용될 수 없습니다. 정의는 최고 형량 확보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건에 적용될 법이 올바르게 적용할 때 실현됩니다. 뒤늦게라도 뺑소니 운전죄가 적용된 건 타당합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