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막으려 강북구청 봉쇄, 민원인 신원 일일이 확인 - 지난달 29일 오후 민노총 산하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분회 소속 노조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강북구청 측이 셔터를 내리고 출입문을 전면 봉쇄해 민원인들이 청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위 사진). 구청 측은 또 노조원의 추가 점거 시도를 막으려 최근 1주일간 청사 출입문 4개 중 3개를 아예 막고 출입이 가능한 나머지 한 곳에서 청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노조원인지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3일 구청 직원들이 문 앞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모습(아래 사진). /박진성 기자

3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북구청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4곳 중 3곳은 셔터가 내려져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유일하게 열린 정문 앞에는 구청 직원 2명이 지키고 서서, 청사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붙잡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한 구민이 “여권 발급 때문에 왔다”고 대답하자 이들은 그제야 “1층으로 들어가셔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하고 길을 비켰다.

강북구청 공무원들은 최근 1주일째 이런 ‘민원인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민노총 산하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분회 소속 노조원 수십명이 작년 11월 말부터 인력 충원과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약 한 달간 구청 건물 안에 있는 구청장실 앞 복도와 민원실 등을 점거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이들은 경찰에 연행됐지만 점거가 시작될 때 민원인이라고 하면서 건물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시 점거 농성을 못 하게 이런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29일 낮에는 노조원들이 구청에 또 들어올 듯한 움직임이 있어 구청 측이 모든 출입문을 봉쇄해 약 1시간 동안 민원인 20여 명이 구청 건물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 청사 점거가 유행”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민노총뿐만 아니라 각종 노조와 이권 단체, 시민 단체 등이 수시로 시청·구청 등에 찾아가 청사 안에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점거 농성을 벌이는 일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특히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상당수 지자체에서 지자체장이 교체되면서 각종 정책이 많이 바뀌자 항의하는 이해관계자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원래는 지자체에 항의하기 위해 청사 앞에서 시위하거나,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올해 CJ대한통운 택배노조의 본사 점거, 서울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점거 등 사회적으로 이목이 쏠린 사건에서 건물 내부를 장기간 점거하는 방식이 잇따른 여파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피해를 보는 건 시민들이다. 민원인들이 필요한 업무를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간접적으로는 일부 공무원이 노조 대응 업무로 차출되면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남 순천시청 출입구 현관에는 지난달 7일부터 한 달 가까이 민주노총 소속 순천만잡월드와 순천만국가정원 노조원 10여 명이 텐트를 치고 밤샘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급여 인상과 상여금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때문에 직원과 민원인들이 한 달 가까이 정문 대신 측면 출입구로 드나들고 있다. 순천시청 관계자는 “이들이 나가질 않고 있어 직원 70여 명이 3교대로 계속 청사를 지키고 있다. 낮에는 노조를 살펴보느라 바빠 야근하면서 원래 자기 업무를 보는 직원도 많다”고 했다.

지난달 12일과 15일 충남 태안군에서는 해상풍력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군의회를 점거하는 일도 있었다. 임시회 예산안에 해상풍력 관련 예산 5억원이 포함되자, 이걸 반대하는 어민 등이 농성을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진권 국민의힘 군의원이 다쳐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태안군의회 전재옥 부의장은 “의견을 개진하는 건 좋지만 절차는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지난달 9일에는 공공연대노조 대전지부 소속 10여 명이 대전시청 건물 1층을 점거한 채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7시간 동안 시위했고, 같은 달 19일에는 대구시의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일 변경’에 반대해 민노총 마트 노조원들이 3시간가량 시청 대강당을 무단 점거했다. 이들도 민원인을 가장해 시청사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곳곳에서 점거 농성이 잇따르자 경찰도 내부적으로 시민 불편이 커질 수 있는 불법 점거와 농성에 엄정 대응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적극 체포에 나서고 있다. 지난 12월에만 서울 강북구청 점거, 대구·대전 시청 점거 사건에 잇따라 경찰을 대거 투입해 조합원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내고 일부는 업무 방해 혐의 등에 따른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점거 농성이 분명한 사안인 만큼 계속 수사해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