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2년간 우리 군경(軍警)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진상 규명을 신청받은 사건 중 인민군이나 좌익세력의 학살로 드러난 경우가 최소 222건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입수한 진실화해위 자료에 따르면, 전남 신안·진도 등과 충남 서산·태안, 경남 함양 등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고 신청받은 사건을 조사했더니,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한 학살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6·25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나 인권침해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설치된 독립적 조사기관으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지명한다.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에 마련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기의 모습. 2020.12.10/뉴스1

전남 신안군 출신 김모씨는 2021년 8월 조부모와 숙부 등 식구 9명이 6·25 당시 군경에 의해 죽었다면서 진상 규명을 신청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는 1950년 8월~10월 신안군 일대에서 우익 가족 50여 명이 지방 좌익들에 의해 바다에 수장되거나 구덩이에 매장된 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냈다. 조사관이 김씨에게 사건 경위를 구체적으로 묻자, “어릴 때 일이라 잘 모른다”고 하더니 “부자라는 이유로 좌익에 학살당한 것이 맞다”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살해된 김씨 가족 중엔 두살·네살배기 사촌형제도 있었다.

이 자료는 2022년 9월 15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9일까지 민간인 희생 사건 접수를 받았다. 가해 주체가 뒤집힌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 관계자는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가해 주체가 바뀐 사례는 300건 안팎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청인들이 인민군·좌익세력에 가족이 희생당했는데도 군경을 학살 주체로 지목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잘 모른다’거나 ‘착각했다’고 답하기 때문이다. 군경 학살로 드러나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현행법상의 문제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좌익에 의해 살해됐다고 신청하면 국가로부터 한푼의 보상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1기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에 따라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해 보상받은 사람만 5624명이다. 총 보상 금액은 7500억원, 1인당 평균 1억3200만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