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지 넉달 가까이 지난 2023년 2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곳곳에는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띈다. /박상훈 기자

“손님이 2~3일에 한 명 올까 말까 하니 가게 문을 여는 게 의미가 없잖아요. 이태원이 언제 살아날지 기다리는 게 힘들어요. 경기 구리시에 사는데 하반기쯤에는 여기를 떠나서 그 근처에서 가게를 내려고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85㎡(약 26평)짜리 반지하 가게에서 26년간 옷을 팔아온 심모(58)씨는 손님 없는 매장 안에 멍하니 앉아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심씨는 “지난주 부동산에 가게를 내놨다”며 “지금도 빚내가면서 가게를 열고 있는데 너무 답답해 이태원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심씨의 가게가 있는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와 이어지는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약 4개월이 되었다. 그사이 대부분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는 등 일상이 회복되었고 봄도 성큼 다가왔지만 여전히 이태원에는 찬바람이 분다. 사람들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상인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의 한 골목 앞을 플라스틱 사슬로 막아둔 모습. 그 너머로 보이는 점포 안에는 쓰레기봉투와 공사장 등에서 볼 수 있는 안전 고깔 등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른쪽에 있는 바(bar)는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지난 21일 오후 7시쯤 찾은 이태원 일대의 중심 거리 중 하나인 ‘세계음식거리’는 저녁 장사로 한창 바빠야 할 시간이었지만 인적이 드물고 싸늘한 공기만 감돌았다. 약 300m에 달하는 이 골목에 있는 가게 64곳 중 29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4곳은 아예 내부가 텅 빈 채였고, 나머지 가게 상당수는 각종 고지서와 문에 쌓인 뽀얀 먼지가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떤 가게는 우편함에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 등 공과금 청구서 14개가 꽂혀 있었고, 한 가게는 용산구청에서 작년 12월쯤 보낸 ‘이태원 사고 관련 소상공인 피해 신고 접수 신청 안내’ 종이가 각종 고지서와 함께 출입문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참사 현장 바로 앞인 이태원역 1~2번 출구 주변 260여m 거리에서도 가게 40여 곳 중 10여 곳은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이 중 한 가게는 전기 요금이 6만원가량 미납돼 2월 16일 이후로 전기가 끊긴다는 안내문이 매장 입구에 붙어 있기도 했다.

이태원에서 4년간 부동산을 운영한 최모(59)씨는 “핼러윈 참사를 기점으로 빈 가게들이 크게 늘었는데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으니 공실만 계속 쌓이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지역을 원하는 자영업자들이 이제는 이태원을 고려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태원 일부 상인이 지난달부터 음식 값 등을 10~30% 깎아주는 등의 행사를 열고 참사를 추모하는 캠페인도 열었지만 참사의 충격을 씻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용산구는 이 일대 상인들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지난달 10일 이태원 인근 가게 2600여 곳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 100억원어치를 발행했는데,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약 23억원어치밖에 팔리지 않았다. 해당 상품권은 액면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데,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지역 상품권이 조기에 매진되는 것과 큰 차이다.

핼러윈 참사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이태원. 상가 주인들도 하나 둘 문들 닫고 떠나고 있다. 한 상가 입구에 우편물도착안내서가 붙어 있다./박상훈 기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상가 입구에 각종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있다./박상훈 기자

영업하는 자영업자들 중에서도 이태원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태원역 인근의 한 옷 가게 창문에는 보라색과 빨간색 글씨로 ‘창고 정리’ ‘세일’이라고 적힌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가게 사장 김모(60)씨가 오는 3월 말 마포구로 가게를 옮기기로 해 물건을 정리하려고 붙인 것이다. 김씨는 “19만원에 팔던 코트를 3만원에 내놔도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없다”며 “이태원을 좋아해서 13년 동안 자리 지키며 장사를 해왔는데 더는 이곳에서 장사할 힘이 없다. 이태원 악재에 지쳤다”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7년간 골동품 가게를 운영해 온 김모(66)씨는 유리창에 ‘임대’라고 적힌 종이를 직접 적어 붙이고 가게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참사 이후 손님들도 오지 않으니 아예 이곳에서 장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게가 나가면 조금 쉬었다가 다른 동네에 열 생각이다”라고 했다.

새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업종을 바꾸고 간신히 장사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이태원에서 7년간 소곱창 음식점을 운영해 온 김모(67)씨는 가게를 뜯어내고 백반 집으로 바꾸는 중이다. 참사 이후 손님의 80% 가까이 됐던 20~30대 여성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태원을 벗어나고 싶어도 가게가 나가지 않는다”며 “인근에 공사장이 두 군데 있어서 공사장 인부들이 값싸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백반 집으로 고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