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SG증권 사태’ 관련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뒤 관련 압수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주가 조작 세력은 당국이 조사에 돌입하자 급히 특정 회사의 주식을 처분했고, 이들 종목의 시가 총액은 나흘 만에 8조원 이상 감소했다. /뉴스1

금융 당국과 경찰은 27일 주가조작 의혹이 불거진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관련 전방위 압수 수색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지난 24일 선광, 하림지주 등 8종목이 외국계 증권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발 매물로 폭락하면서 불거졌다. 주가조작 세력이 이 종목들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정황을 금융 당국이 포착하고 조사에 착수했는데, 이를 눈치챈 일당이 급히 주식을 매도해 주가가 폭락했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8종목 주가는 나흘간 최대 75%가량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8조원 이상 감소했다.

금융위 자본시장조사총괄과는 이날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H투자컨설팅 업체 서울 사무실과 이 업체 명의로 된 S골프연습장, 업체 관계자의 주거지 등을 압수 수색했다. 금융 당국은 이들이 미리 짜고 주식을 높은 가격에 사주는 수법(통정매매)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정황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5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문제의 주가조작 세력이 미등록 투자 자문 업체를 운영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H투자컨설팅 업체 사무실에서 휴대전화 200여 대를 압수했다. 경찰은 주가조작 세력이 이 휴대전화를 통해 ‘전주(錢主)’들의 명의로 개설한 증권 계좌로 시세조작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24일 주가조작 세력 일당으로 의심되는 10명을 출국 금지 조치했다.

이들 일당에게 투자해 사실상 ‘전주’ 역할을 했던 이들은 자신들도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을 대리할 예정인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1000명 정도가 손해를 봤고 이 중 300명 정도는 의사라는 말도 있다”며 “청담동 전주들, 의사 등 전문직도 있고 손해액이 10억~100억원으로 다양하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전주’ 역할을 한 사람들이 공범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주가조작 세력에게 돈을 맡긴 전주들이 주가가 올라 평가이익이 발생했을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다만 전주들이 수익 창출 방법은 알지 못하고 주가 조작 일당의 ‘고수익 투자’라는 선전에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식으로 투자한 사람 중에는 가수 임창정씨 등 연예인도 다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씨는 “30억원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1억8900만원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예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한 이로는 S골프연습장의 임원인 골프 강사 안모씨가 거론된다. 남부지검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번 사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조만간 이첩받을 예정이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지난 24일 주식시장에서 다올투자증권, 하림지주, 다우데이타, 세방, 삼천리,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선광 8종목이 별다른 요인 없이 동시에 하한가를 기록하면서다. 급락 원인으로 외국계 증권사인 SG증권의 차액결제거래(CFD) 계좌에서 발생한 대량 매도가 지목됐다. 이후 주가가 급락하자 이 계좌에 돈을 빌려준 증권사들이 대규모 반대매매(대출금 상환을 위해 담보로 잡은 주식을 강제매각하는 것)에 나서며 하락 폭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 종목들은 대부분 작년부터 꾸준히 주가가 올랐다. 나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서울가스의 주가는 작년 4월 20일 18만3500원에서 지난 21일 46만7500원으로 1년 새 155% 올랐다. 같은 기간 삼천리는 358%, 대성홀딩스는 124%, 선광은 136% 상승했다. 그러나 서울가스는 4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27일 주가가 11만2700원으로 1년 전보다 오히려 39%가량 하락한 상태다.

이들 종목은 꾸준히 주가가 오르는 과정에서 ‘소형 가치주’로 소문 나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해당 기업들의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8종목의 소액주주 비율은 평균 30.43%다. 빚을 내서 투자한 개인들의 비율이 높은 것도 문제다. 지난 21일 기준으로 8종목의 평균 신용잔고율(대출받아 투자한 비율)은 10.29%로 유가증권시장 평균(0.98%)의 10배에 달했다.

8종목을 담은 펀드의 수도 많아 피해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상장지수펀드(ETF)를 포함해 전체 105개 펀드가 해당 종목들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