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외국인 여성들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일부는 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두르는 천인 ‘히잡’을 쓰고 있다. /김지호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광장. 히잡을 두른 여성 외국인 10여 명이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 등장하는 광고 영상이 재생되자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연분홍색 히잡을 쓴 인도네시아인 피마 마지다(18)양은 “8년 전부터 K팝, K드라마에 빠져 한국을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었다”며 “BTS 말고도 엑소와 NCT드림 멤버들을 좋아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별마당 도서관에서 초록색 히잡을 쓴 채 사진을 찍고 있던 인도네시아인 나지화 아즈자흐라(22)씨는 “스무살 때부터 NCT드림 멤버 ‘해찬’ 팬이었는데, 한국에 오면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왔다”고 했다.

최근 K팝, K뷰티 등 한류 열풍을 좇아 히잡을 쓴 무슬림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16만7505명이던 무슬림 관광객은 작년 32만5544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32만7945명이 방한해 작년 방문객을 이미 넘어섰다. 이들 중엔 특히 젊은 여성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하이브 기획사 앞을 찾은 관광객 35팀 중 8팀은 히잡을 쓴 여성 무슬림 여행객이었다. 이란 여대생 차리프 파티마(21)씨는 “성인이 되고 한국에 오는 것이 이란 학생들의 로망”이라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혼자 나흘간 한국 여행을 왔다는 시티 아이샤(29)씨는 “고등학교 시절 한국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현빈과 이민호 팬이 됐다”며 “2008년 ‘동방신기’를 시작으로 K팝에 입문하게 됐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 동아리 대학 친구 셋과 함께 여행을 온 파라 마하라니(23)씨는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그는 “떡볶이와 닭갈비를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머리에 '히잡'을 두른 이슬람 여성들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김지호 기자

지난달 25일 명동 거리에는 전문가 메이크업과 퍼스널 컬러 진단 서비스를 받기 위해 무슬림 관광객들이 줄을 섰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A씨는 “한국에서 메이크업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며 “한국 드라마,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보며 K뷰티에 관심이 생겨 1년 전부터 한국 화장품만 찾아서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외국인들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던 이재원(21)씨는 “외국인들이 ‘한국식 메이크업’을 원해서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특정 K팝 아이돌 메이크업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 31일 명동에서 만난 말레이시아인 디아나 야신(27)씨는 엿새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도 한국 화장품들이 널려 있다”며 “한국 드라마 열풍과 함께 화장품이 매우 유명해져서 매장에서 화장품 15개를 샀다”고 했다. 그는 화장품 매장에서 마스크팩, 토너, 로션, 크림 등을 구매했다고 한다.

이 같은 열풍에 힘입어 국산 화장품 매출도 급증했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올해 1~7월 명동과 홍대, 동대문 지점 외국인 관광객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배, 강남 일대와 성수 지점 매출액은 12배 늘어났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7월 화장품 매장인 시코르(CHICOR) 홍대점은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끊겼던 지난 2020년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약 40배 늘었다.

앨범, 굿즈 등 한류 연예인 관련 매출도 급증했다. 하이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앨범·굿즈 매출은 2765억6500만원에서 작년 9475억4300만원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SM에 따르면 성수점, 에버랜드점 굿즈숍의 매출은 작년보다 250% 늘었다. 이곳 굿즈숍을 찾는 방문객의 90%가량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무슬림들, 그중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한국 문화가 ‘해방구’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구기연 서울대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종교에 근간을 둔 문화적 보수주의가 강력한 이슬람 세계에서, 감각적으로 화려한 한국 문화는 종교에 엄격한 기성세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적 돌파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서구 문화엔 기본적으로 반발심과 이질감이 있지만, 한국 문화는 ‘아시아의 것’이라는 동질감을 갖는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무슬림계 젊은 층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나 K팝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친근감을 갖고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과거에 비해 무슬림을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문화도 점점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