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성남 서현역 사고 현장에 숨진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1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한 칼부림‧흉기 난동‧성폭행 살인 등 ‘묻지마 흉악 범죄’가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기본질서를 깨뜨리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여러 대책을 내놨습니다. 이에 야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인권 침해”라며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국무총리, 법무부, 경찰청, 보건복지부 및 국회에서도 무차별 흉악 살인 범죄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떤 정책을 발표했나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사법입원제도 도입 ▲공중협박죄 및 공중장소 흉기소지죄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포퓰리즘”이라고 했습니다.

네, 엄벌주의 대책이라는 의견이 있던데요. 현재의 제도가 범죄를 진압하기 충분한데도 강력한 처벌 규정을 새롭게 도입한다면 ‘엄벌주의로 회귀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현재로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도 유기징역형보다 빨리 가석방되어 사회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신당역 보복살인 사건을 범한 전주환은 1심에서 징역 4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형법은 유기징역의 가석방 기간은 10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에 따라 전주환은 39년을 복역해야 가석방될 수 있습니다.

2심에선 이보다 높은 무기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런데, 무기징역형이 확정되면 전주환은 20년만 지나면 가석방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은 현 제도에서 발생하는 정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입법입니다. 다만, 향후 수형자의 개선‧교화와 사회 보호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무기징역형 가석방 기간을 20년에서 50년으로 개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 /뉴스1

◇사법입원제도 도입 역시 인권에 반하는 제도라는 반대 의견이 있습니다.

네. 정신질환자라 하더라도, 입원 치료에는 개인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상의 ‘보호입원’ 요건이 너무 어렵게 되어 있어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18년 정신장애 범죄 수는 7244건에서 2022년에는 9875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치료입원제도는 법원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를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법관의 판단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현재 보호입원, 행정입원보다 인권침해 소지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물론, 법관의 전문성 확보 방안, 사법 입원 대상자 선정 기준 마련, 사법 입원 기간 설정과 친환경적인 입원 시설 확충 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공중협박죄 및 공중장소 흉기소지죄 도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종래엔 살인예고 글과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소지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처벌했습니다.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올라오는 살인예고 글은 해당 장소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공중장소에 흉기를 소지한 이가 있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1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기엔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범죄행위입니다. 당연히 처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입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총평을 해주신다면요?

지금이 무차별 흉악 범죄를 막기 위한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일한 형사 정책을 펼치면 매우 위험한 사회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무차별 흉악 범죄를 잠재우기 위해선 처벌 및 관리 정책을 중심으로, 예방정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처벌 및 관리 정책을 이야기하면 ‘엄벌주의로 회귀한다’, ‘인권침해 정책이다’ 등의 의견이 늘 따라 나옵니다. 엄벌주의라고 말하기 위해선 새로운 제도 없이도 지금 발생하는 흉악범죄에 대응하는 체계가 완벽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무기징역형의 가석방 기간은 턱없이 짧습니다. 그리고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 치료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또한 예전엔 장난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이 현실적 공포가 되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 형사정책도 변해야 합니다. 예방 대책 없는 처벌 정책은 ‘팥 없는 붕어빵’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예방만을 말하기엔 너무 절박합니다. 예방에는 시간과 예산, 그리고 인력이 필요합니다. 형사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국민의 생명 앞에서 덜 위험하다는 이유로 차선의 형사정책을 선택하는 건 의미 없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