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전 대법관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1일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을 구속 기소하면서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50억 클럽과 관련해서는 전직 검찰 출신 고위직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검찰 안팎에서 언급되는 다음 수사 대상으로는 권순일 전 대법관이 꼽힌다. 그는 대장동뿐만 아니라 이재명 재판거래 의혹, 바로세움3차 사건 등 여러 사건에서 거론돼 왔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 8월 16일 BBQ 사건 변호인단에서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9월 대법관 퇴임 후 자신이 변호사로서 맡은 첫 번째 사건을 수임 20여일 만에 내려놓자 앞으로 들이닥칠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BBQ 사건은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과 박현종 bhc 회장이 10여년째 다투고 있는 70억원대 소송전. 다수의 판사 출신 변호인단이 참여한 이른바 ‘치킨 전쟁’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두 회사는 거물급 법관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소송대리인으로 참여시켜 양측의 변호인단 명단 자체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BBQ 측은 지난 7월 21일 권 전 대법관을 관련 사건 민사 소송 대리인으로 추가 선임했다. 김능환 전 대법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현철 등 기존 변호인단에 권 전 대법관을 합류시켜 거물급 대리인단을 완성한 것이다. bhc 측 역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했는데 김용덕 전 대법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유해용 변호사 등이 맞서고 있다. 업계에선 두 회사의 소송전이 법적 다툼을 지나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되면서 거물급 법조인들이 합류하게 됐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두 회사 소송은 승패를 떠나 대법관 출신들의 맞대결도 관전포인트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권 전 대법관이 사건 수임 20일 만에 변호인단에서 하차하자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권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건이 터지고 ‘50억 클럽’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변호사 활동을 재개하며 BBQ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검찰 소환, 구속 여부에 따라 권 전 대법관이 속한 BBQ 측 변호인단과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따라서 자신이 계속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한 것이라는 게 일부 법조계 분석이다.

최고 요직만 거친 엘리트 판사 출신

권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명 전까지 엘리트 판사로서 최고 요직만을 두루 거쳐 왔다. 법원행정처 조사 및 연구심의관으로 평판사 시절을 보냈고, 부장판사 때는 행정법원 재판장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에는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수석 부장을 역임하며 남다른 두각을 드러냈다. 대법원에 파견된 뒤 선임·수석재판연구관을 지냈는데, 이 자리는 가장 뛰어난 고위법관이 발탁돼 가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이후 법원행정처 실장과 차장을 역임하고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특히 법원행정처 차장은 기관 내 서열 2위 직급으로 예비 대법관, 예비 헌법재판관의 자리라고도 불린다. 이렇듯 최고 핵심 요직만 거친 엘리트 판사지만 그는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여러 논란을 몰고 다녔다.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 대한 재판거래 의혹이 대표적이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무죄 취지 파기 환송 판결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같은 해 9월 권 전 대법관이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을 맡아 매달 1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의혹은 더 불거졌다. 당시 무죄 판결을 주도해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연장해주도록 하는 대가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권 전 대법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재판 전후 김씨가 권 전 대법관실을 8차례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 둘의 의심쩍은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로부터 고문료를 받을 때 변호사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인 점도 핵심 논란이다. 변호사 등록이 안 된 상태에서 법률자문을 해주고 돈을 받았다면 변호사법 위반이고, 법률자문도 안 해주고 돈을 받았다면 사후수뢰라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 이후 권 전 대법관이 변호사 등록을 하려 하자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전 대법관에게 자진철회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법조 고위직의 무분별한 변호사 활동을 제한하는 이른바 ‘권순일 방지법’ 발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7일 권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기가 끝나 퇴임하면서 중앙선관위원장직 사퇴를 거부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중앙선관위 위원장은 보통 현직 대법관이 겸직을 하다 임기가 끝나면 동시에 내려놓는 게 관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선관위 핵심 보직인 사무총장 후임 인사를 한 뒤에 퇴임하겠다고 해 비난을 받은 바도 있다.

그를 둘러싼 ‘대장동’과 또 다른 의혹들

앞선 주간조선 보도에서 언급했듯 권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태 이전에 ‘강남 바로세움3차’ 사건에서도 박영수 전 특검과 함께 등장해 또 다른 의혹을 키우고 있다.(주간조선 2767호 ‘그는 어떻게 대장동을 물었나’ 참조) 권 전 대법관은 박 전 특검이 연루된 부동산 사건인 ‘강남 바로세움3차’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었다. 앞서 언급대로 권 전 대법관은 2012년 8월부터 2014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한 뒤 2014년 9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2012년 12월부터 2년 동안 계류된 사건을 대법관 임명 3개월 만에 주심으로서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관 3개월 만에 특정 사건 주심이 된 것, 그리고 2년 동안 계류된 사건을 3개월 만에 파악해서 판결을 내렸다는 점 등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상고심의 경우 상고 사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3개월 안에 심리불속행으로 기각 처리하는 게 통상적이다. 이처럼 권 전 대법관과 박 전 특검과의 연결고리가 계속해서 법조계 안팎에서 흘러나오면서 박 전 특검 구속 후 언론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권 전 대법관으로 향했다.

2019년 ‘강남 바로세움3차’ 사건 관련 소송들에 대해 이례적으로 재심이 열려 현재 재재심 중에 있기 때문에 최초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편, 박 전 특검의 구속기소로 ‘대장동’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만큼 ‘50억 클럽’에 거론된 또 다른 법조인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도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일부 정황과 관련 증거들이 드러나 있는 권 전 대법관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집중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공식적인 변호사 활동을 접고 다시 은둔 생활로 들어간 엘리트 판사 권 전 대법관이 이번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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