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의 모습. 주최 측 추산 20만명이 참석해 세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이날 집회는 신고된 시간에 맞춰 진행됐으며, 집회가 끝난 직후 쓰레기도 없었다. 정치인, 민주노총, 민폐가 없는 3무(無) 집회라는 평가가 나왔다./ 50만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미디어팀 제공

교사들의 2일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는 올해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 하지만 양상은 이전의 시위들과 달랐다. 교사들의 집회 행렬은 국회 앞에서 1㎞가량 떨어진 여의도역까지 이어졌지만, 이들은 집회 시간을 어기거나 쓰레기를 남기지도 않았다. 지난 5월 민주노총의 1박2일 노숙 시위 때는 집회 참가자들이 술판을 벌이거나 노상 방뇨를 했다. 쓰레기도 100t가량 쌓였다. 경찰은 교사들의 이번 집회를 정치권과 민주노총, 민폐가 없었던 3무(無) 집회로 호평했다.

교사들의 집회가 기존과 다르게 진행된 건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현장 교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추모 집회가 시작됐는데, 집회 주최 측은 줄곧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과 거리를 두고 있다.

집회 운영은 수업 자료 공유 등이 주목적이었던 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을 통해 이뤄진다. 주최 측 관계자에 따르면 매회 집회별로 30~50여 명의 집행부 인원을 선발하고, 집회 일정이나 준비 사항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별로 집행부의 이름이 조금씩 달라진다. 2일 집회 주최는 ‘교육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는데, 지난달 26일 집회는 ‘전국 교사 일동’이 주최했다.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 3만명의 교사가 모였을 당시 전교조를 비롯한 6개 교원단체가 참가했지만 일회성 동참이었을 뿐 집회를 주도하진 않았다고 한다.

이번 교사 집회에서는 대규모 집회에서 흔히 등장하는 특정 정파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도종환, 강민정 의원이 개인적으로 집회 현장에 참석했지만 집회 현장 발언은 없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집회가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자발적으로 온 것으로 알고 있고, 앞으로 열릴 교사 집회에서도 정치인을 초청하거나 무대 발언자로 올릴 생각은 없다”고 했다.

현장을 관리했던 경찰에서는 이날 집회의 질서 유지와 뒷정리가 훌륭했다는 평이 나왔다. 한 경찰관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집회 내용이나 다른 이슈들은 차치하고 깔끔 그 자체였다”며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질서 유지 인원을 선발해 통제하고 자리 배열을 맞춰 앉았다”고 했다. 이 경찰관은 “쓰레기도 다 가져가고 집회 시간 불법 연장이 없었다”며 “이런 집회만 다니면 좋겠다”고 했다. 이 글에는 3일 오후 기준 1600여 개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교사들의 질서 있는 집회 문화에 대한 격려가 주요 내용이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그늘은 선선해도 햇빛 아래는 뜨거운 하루였는데 (교사들이) 질서를 잘 지켜주시고 정해진 시간만 집회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대한민국 시위 문화가 전부이랬으면”이라고 했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0902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많은 교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50만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미디어팀 제공

교사들은 2일 집회에서 ‘악성 민원인 강경 대응’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 등이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 교권 보호 등을 요구했다. 무대에 오른 한 교사는 “우리는 이제 점점 가르칠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며 “상처 입은 사람에게 공감해주고 약한 자를 지켜주라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라고 가르칠 수가 없다”고 했다. 교사들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을 주장했다. 정서적 학대 행위가 광범위하게 적용돼 교사에게 정당한 교육 활동이 무분별하게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3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4일 전국 초등 교사들이 집단 연가 등을 예고한 것과 관련해 대책을 논의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문자 공지를 통해 “당은 교육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교권 회복 4법을 포함해 교권 회복 종합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라며 “선생님들의 고충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고, 선생님들을 악성 민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드려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여야는 지난 1일 교권 회복 관련 4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교사들이 모여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를 열고 있다. 주최 측 추산 20만명이 모인 이 집회에서 교사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썼다. 교사들의 이날 집회는 정치인, 민주노총, 민폐가 없는 3무(無) 집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뉴시스

교육부와 법무부도 3일 교사들이 무분별하게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전담팀(TF)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시도교육청에서 아동학대로 신고됐다는 사실만으로 교사를 직위해제 하던 잘못된 관행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신속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