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사관이 이달 초 서울대 중앙도서관 ‘시진핑 자료실’에 1400만원 상당의 고고미술사학 서적을 기증하기로 했다. 명화전집(明畫全集·명나라 회화 전집)과 청화전집(清畫全集·청나라 회화 전집) 5종 22부로, 예술사·문화사 연구의 필수 서적이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고, 고가(高價)라 구매가 쉽지 않은 서적이라고 한다. 이런 서적을 중국대사관이 선뜻 사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대 도서관 시진핑 자료실은 반중 정서 때문에 폐쇄까지 거론된 곳이다. 이번 기증은 중국대사관의 자료실 유지를 위한 노력으로 해석됐다.

서울대 정문 전경 2020.6.18/뉴스1

17일 서울대에 따르면, 명화전집·청화전집 기증은 서울대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중국대사관은 그동안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도서를 일방적으로 보내왔다. 2015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시진핑 자료실이 생긴 이후 수차례 기증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직접 선정한 도서·자료였기 때문에 학술 도서가 아닌 책도 다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필요한 학술 도서를 중국 측에 요청하면 대사관이 기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희귀본, 고가 도서, 이용자 희망 도서 등 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를 중국대사관이 기증해 주기로 협의했다”고 했다.

시진핑 자료실 도서 기증 방식이 바뀐 건 최근 반중 정서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시진핑 자료실은 지난 2014년 시진핑 주석이 서울대에서 강의한 뒤 1만52점의 중국 관련 도서·영상 자료를 기증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작년 10월 국회에서 자료실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발언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시키는 중국 최고 지도자를 예우해 주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었다. 이후 시민 단체는 물론 서울대 동문까지 자료실 폐쇄를 요구했다.

서울대는 국내 비판 여론을 달래고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피하기 위해 시진핑 자료실 도서 기증 방식을 바꾸자고 중국 측에 제안했다고 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중국 측도 폐쇄 여론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의견을 받아들여 준 것 같다”며 “어쨌든 자료실이 논란 없이 더 잘 활용되는 것이 서로에게 ‘윈윈(Win-Win)’ 아니겠느냐”고 했다.

서울대는 시진핑 자료실 자료 중 논란이 될만한 도서는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장덕진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올해 상반기에 시진핑 자료실 소장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했고 역사 왜곡, 중국공산당 체제 합리화, 시진핑 찬양 등의 내용이 포함된 도서 11종을 선별해 별도 관리하고 있다”며 “앞으로 현대 중국 이전의 학술 도서 위주로 기증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