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찾은 경기 동두천시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성병관리소였던 건물의 모습. 폐허가 된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엔 잡초가 무성하고 벽면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라피티(graffiti·낙서화)는 ‘흉가 체험’ 방송을 한다며 찾는 유튜버들이 남겨뒀다./박상훈 기자

지난달 15일 찾은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락. 등산객들이 오가는 길옆에 2m 높이의 철제 펜스가 처져 있었다. 펜스 안쪽으로 폐허가 된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잡초가 무성하고 벽면이 무너져 내린 이 건물은 ‘양공주’라 불렸던 기지촌 여성의 ‘성병 관리소’ 중 한 곳이다. 1973년부터 정부가 운영하다 1996년에 폐쇄됐다.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격리된 여성들이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같았다는 것이다.

동두천은 6·25전쟁 이후 대표적인 주한 미군 주둔지가 됐다.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 제정으로 집창촌 등에서의 성매매는 불법이 됐지만, 기지촌 반경 2km는 예외였다. 기지촌마다 ‘양공주’들이 생겼다.

1960년대 초반 정부는 미군 기지촌 주변에 성병 관리소인 ‘낙검자 수용소’를 만들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주 2회 성병 검진을 받고 성병이 없다는 검진증을 발급받아야 성매매를 할 수 있었다. 성병에 걸린 여성은 ‘검진에서 떨어졌다’는 낙검(落檢)자로 분류돼 수용소에 갇혔다.

이곳에 수용된 여성 중에는 항생제인 페니실린 과다 투여로 쇼크사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여성들은 동두천 상패동의 무연고 공동묘지에 묻혔다.

작년 9월 대법원은 “정부의 기지촌 조성·운영·관리 등 불법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117명에게 총 6억4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이 ‘낙검자 수용소’는 1987년부터 사실상 운영이 중단됐고, 민간 소유 부지에 있던 건물은 27년간 방치됐다. 동두천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일부 주민은 “부끄러운 흉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아픈 역사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동두천 토박이로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소속인 최희신씨는 “미군 부대가 주둔한 광암동과 보산동 일대가 겪은 흥망성쇠와 ‘양공주’의 역사는 떼 놓을 수 없다”며 “이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시대를 악착같이 살아온 증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