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지난 12월20일 개봉해 11일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누적관객수 300만을 넘어섰다. '서울의 봄'은 일찌감치 누적관객수 1200만명을 넘긴 시점이었다. 지난 12월3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 예매를 하고 있다. /뉴스1

작년 12월20일 개봉한 영화 ‘노량’의 영화관 상영은 지난달 말 사실상 종료됐다. 관객은 455만명을 모아 영화관 매출 약 449억원을 올렸다. 투자자 기준 손익분기점은 720만명. 관객수가 뒷심을 받지 못하자, 제작자 측은 노량을 즉시 OTT 등 동영상 플랫폼(VOD)에 공개했다. VOD로 추가 수입을 내 손익분기점에 이르지 못한 손해를 줄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량 제작자 측이 이번에 보여준 극장 개봉작의 ‘VOD 직행’은 앞으로 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홀드백(Hold Back)’ 규제 도입을 결정해서다. 홀드백이란 영화관에서 상영한 영화를 개봉일 기준 6개월이 지나야 넷플릭스 등 VOD에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다.

이 홀드백 규제를 두고 영화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4일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정부가 조성하는 모태펀드 영화계정 관련 출자사업 공고에는 ‘영화 분야 투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정한 홀드백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지난해 11월 개봉지원펀드에 시범적으로 홀드백 의무를 적용한 데 이어 규제가 확대되는 것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취임 후 첫 번째 정책으로 ‘영상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홀드백이 문체부가 조성하는 모태펀드 돈으로 만든 콘텐츠에 국한된다고 하지만, 비율로 보면 한국 영화 약 30%를 개봉 뒤 6개월 지나야 안방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 210편 가운데 문체부 펀드 투자를 받은 작품은 62편이었다.

홀드백 논의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영화관 방문자수 급감, 최저임금 상승으로 티켓 가격 급등 등 영화 산업이 침체되는 동시에 VOD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게 배경이다.

◇“매출 68%가 영화관” vs. “실패땐 빨리 OTT로 넘겨야 적자 줄어”

홀드백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크게 영화제작업·극장업계와 VOD업계, 배우업계 등이 있다.

영화관, 배급사, 제작사 등을 중심으로 한 영화제작업·극장업계에선 홀드백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2022년 기준 1조7000억원 규모인 국내 영화산업 전체 매출에서 영화관 상영 수입이 68%에 달해서다. 영화관이 급격히 힘을 잃어 영화산업 전체가 위축되는 걸 막을 최소한의 장치로 홀드백이 필요하다는 게 영화업계의 대표적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화산업의 주된 수익원은 영화관”이라며 “한국 영화산업의 재도약을 위해선 홀드백과 같은 제도를 통해 영화 유통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도 홀드백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관에서 개봉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VOD로 빨리 팔아야 ‘본전’을 건지는데 더 유리해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영화가 신선할 때 VOD에 넘기면 일정 시간 뒤에 넘기는 것 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다. 예상 보다 영화가 잘 안 됐을 때엔 빨리 OTT에 좋은 금액 받고 넘기는 게 손익분기점에 가까이 가는 방법인데 이를 홀드백으로 무작정 묶어 버리면 영화를 살리겠다는 취지와 달리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VOD업계 “불법 다운로드 다시 판칠것”

VOD업계에선 홀드백이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제한하는 규제라는 입장이다. 또한 영화관에서 상영된 영화를 오랫동안 묶어둘 경우 예전과 같이 토렌트 등을 이용한 불법 다운로드가 다시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VOD업계 관계자는 “홀드백은 소비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다. 범죄도시 3는 1000만명, 서울의 봄은 1200만명이 들었다. 제대로 만들면 사람들은 영화관을 간다”며 “VOD가 자리잡기 전에 영화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영화를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아 봤다. 이 수요를 양성화해 영화업계로 돌려주는 작업을 VOD업계가 해낸 것이다. 그런데 홀드백을 도입하는 건 다시 영화 음성유통화에 물꼬를 트는 규제가 돼 영화업계의 자충수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배우업계 “소비자 입장선 홀드백 좋을리 없어”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한 주연급 배우는 “영화 쪽을 살려야 해서 홀드백의 의도는 좋아 보이지만 사실 마음 한 켠에는 이중적인 마음이 있다. 영화관과 VOD로 동시에 풀리면 배우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영화관에만 풀리면 영화관에 가는 사람에게만 내가 알려지는데 OTT에 풀리면 누구든 쉽게 나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업계를 생각하면 홀드백이 좋지만 배우로서 나만 생각한다면 홀드백이 좋을 리가 없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주연급 배우는 “난 아직도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영화라는 건 ‘시의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걸 시간적인 제약을 주며 딱 잘라 버리는 건 굉장히 폭력적이다. 영화업계 전체에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자기가 만든 영화에 대해 자신감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업황 변화로 소비자들이 300만명 정도 보는 영화에 대해서 너그럽지 않게 된 건데, 결론적으론 영화를 잘 만들 면 되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