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12월 인천 한 식당에서 16만원어치의 음식과 술을 마신 후 학생들이 ‘신분증 확인 안 하셨다’는 협박성 쪽지만 남기고 달아났다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와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영수증에는 “죄송하다”면서도 “저희 미성년자다. 신분증 확인 안 하셨다. 신고하면 영업정지인데 그냥 가겠다”며 오히려 업주를 봐주겠다는 식의 글이 적혀 있었다.

#2. 지난달 부산의 한 술집 앞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면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는 점을 악용한 경쟁업체 때문에 ‘강제 휴가’를 가게 된 업주의 한풀이가 담긴 내용이었다. 그는 “우리 가게에 미성년자 투입한 XX야, 30일 동안 돈 많이 벌어라!!”라고 적었다.

미성년자들이 나이를 속여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구매하면 그동안 자영업자들은 을(乙)이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는 처벌받지 않고, 청소년에게 주류나 담배를 제공한 업주가 처벌받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성동구 레이어57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열 번째, 함께 뛰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살맛나는 민생경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런 부조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척결 의지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8일 ‘함께 뛰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살맛 나는 민생경제’를 주제로 한 열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자영업자가 신분증을 검사한 사실이 CCTV라든지 휴대전화 카메라를 통해 확인되는 경우 행정처분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에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들은 주민등록증을 확인해 온 게 입증되면 이 사안은 (처벌)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서 이렇게 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법대로 하는 건 책임 떠넘기기 아닌가”라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최근 일부 청소년들이 이를 악용해서 술을 마신 뒤 돈을 내지 않거나 스스로 신고하는 사례가 많이 보도되고 있다”며 “술 먹은 사람이 돈 안 내고 신고한 건 돈 낼 생각 없이 먹은 거니까 사기죄로 입건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경쟁 업체가 청소년들을 상대 식당의 영업을 막는 용도로 악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이건 깡패와 사기꾼이 설치는 나라와 똑같다”며 기계적인 법 집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법령 개정은 나중에 하더라도 전국에 공문을 보내 이런 불이익 처분은 내지 말아야지, 이런 법을 왜 집행하나”라면서 즉각 조치를 지시했다.

식당에서 16만원어치 음식과 술을 시켜먹고 값을 내지 않은 학생들이 영수증에 남긴 글. /온라인 커뮤니티

정부는 업주가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이나 폭행·협박받은 사실이 CCTV 등을 통해 확인되면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팔더라도 행정처분(영업정지·과징금)을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이날 밝혔다. 아울러 현재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2개월인 기준을 7일 등으로 낮추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행 식품위생법에서도 면책 조항을 두고는 있다. 조건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 조사가 진행중인 상태에서 구청이 먼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릴 경우, 나중에 무혐의로 드러나더라도 영업 손실은 피할 수 없었다.

정구승 변호사(법무법인 일로)는 “개정을 통해 신분증 확인 사실이 비교적 명백한 경우 행정처분을 애초에 면하게 된다면 그만큼 형사절차에 대한 업주의 부담이 덜어질 것”이라고 했다.

사기죄 처벌의 경우, 현행 법으로도 무전취식죄가 성립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경찰이 해당 혐의를 적용해 청소년을 입건한 사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미성년자의 철없는 시절 사소한 비행에 대해 일일이 형사 처벌로 다스려 전과자를 만들어야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현장에선 있다”며 “경찰청 차원에서 지침이 내려온다면 업주의 고소가 없더라도 적극적인 인지 수사에 나설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