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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전공 입학’을 15년째 실시하고 있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학생들의 ‘특정 전공 쏠림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12일 나타났다. 대학에 입학해 여러 학문 분야를 접한 뒤 다양한 전공 분야로 나아가라는 자유전공학부 설립 취지와 달리 졸업생의 36%가 경영학과 경제학에 몰렸다.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컴퓨터공학 전공, 지식 콘텐츠의 원천이 되는 인문학 전공은 각각 8%대에 그쳤다. 2025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무전공 선발이 확대되면 이런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전공과 진로를 찾게끔 해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로 지난 2009년 출범한 단과대학이다. 입학 후 두 학기가 지나면 의·치·약·간호대, 수의대, 사범대 등 국가 자격증과 관련된 단과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전공을 자유롭게 1개 이상 선택할 수 있다.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무전공 입학 제도와 비슷하다.

그래픽=박상훈

그런데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맡긴 결과 특정 전공 쏠림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입수한 ‘2019~2023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졸업생 주전공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학위를 받은 전공으로 가장 많았던 것은 1위 경제학(18.66%, 245명), 2위 경영학(17.52%, 230명)으로 나타났다. 두 전공으로 졸업한 학생들의 비율 합계는 처음에 전공을 정할 때 상경 계열을 택하는 학생들의 비율 합계(33.46%)보다 약 3%포인트 높았다. 애초 다른 전공을 택했던 학생 중 일부가 중간에 경영학이나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졸업생 전공 분야 3위는 컴퓨터공학(8.61%, 113명)이었다. 2019~2023년 전공을 처음 선택한 자유전공학부 학생의 20.16%(254명)가 컴퓨터공학을 택하면서 경영학(234명)과 경제학(188명)을 모두 앞섰지만, 졸업생 기준으로 비교했더니 컴퓨터공학 전공 비율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의 한 교수는 “컴퓨터공학이 유행이라고 하니 한번 전공으로 선택해보는 학생이 적지 않았지만 공과대학 전공은 공부가 힘들어 중도 포기하는 학생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교수는 “2019~2023년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과 졸업한 학생들은 서로 다른 집단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라고 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졸업생들의 전공 분야 4위는 심리학(5.41%, 71명), 5위는 통계학(4.34%, 57명)이었다. 정보문화학(54명), 생명과학(44명), 정치학(43명), 수리과학(42명), 외교학(39명)이 뒤를 이었다. 인문대 전공자는 극소수였다. 철학(19명)과 미학(14명)을 제외한 나머지 18개 전공을 선택해 졸업한 학생은 지난 5년간 모두 10명 미만에 그쳤다.

정부가 2025학년도 대입에서 무전공 선발 확대를 예고하자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와 전국 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는 지난달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문대에서 단체 성명을 냈다. 이들은 “학생들은 적성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기보다 시류에 따라 소수 인기학과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교육부는 무전공 모집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모집 단위를 비롯한 학사 제도를 대학의 자율에 맡기라”고 했다.

하지만 자유전공이나 무전공 입학 확대에 따른 특정 전공 쏠림 현상은 학생들의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출신인 A씨는 “특히 로스쿨 진학이나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상경 계열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게 유리한 측면이 강하다”면서 “정부나 대학도 학생들을 전공이라는 칸막이에 가두지 않고 미래 준비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