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앞에서 정치 유튜버 6~7명이 각각 자기 채널을 열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손에는 ‘김건희 구속’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고, 마이크로 정부 규탄 발언만 몇 시간 이어갔다. 이들은 미리 집회 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날 경찰 보호를 받으며 방송을 진행했다. /김영우 기자

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윤석열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든 남성 5명이 성인 키 높이 거치대에 휴대전화를 세워두고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이들 맞은편엔 소음 측정기를 든 경찰이 서 있었다. 길을 지나던 한 시민이 유튜버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자 한 유튜버가 “야, 저 사람이 나를 찍었으니 빨리 여기로 와서 확인해”라고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경찰은 달려가 유튜버와 시민의 다툼을 말렸다.

총선을 앞두고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한 뒤 방송을 하는 정치 유튜버가 늘고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회 신고를 하면, 관할 지역 경찰이 배치된다. 홍대입구역의 유튜버들도 매일 2시간씩 마포경찰서에 집회를 신고하고 있고, 경찰이 소요 사태를 대비해 배치되고 있다. 유튜버들이 법을 악용해 경찰을 ‘호위무사’처럼 세워두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유튜버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기 위해 집회 신고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유튜버들이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거나 맞는 경우가 있어 ‘경찰에게 보호받고 싶다’고 한다”며 “방송 중 갈등이 생기고 나서 112 신고를 하면 출동이 늦다며 자신의 방송을 집회로 신고한 유튜버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주변 상인이나 시민에게 민원이 들어와도, 유튜버들은 경찰에 신고한 명분을 내세우며 집회·시위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고 맞선다”고 했다.

경찰이 유튜버들의 일정에 끌려다니는 일도 발생한다. 경찰에 따르면, 한 정치 유튜버는 이번 달 말까지 마포구 일대의 장소 7곳에 매일 집회 신고를 해뒀다. 경찰 관계자는 “이 유튜버는 날마다 홍대, 합정, 신촌 등 7개소 중 무작위로 한 곳을 정해 게릴라 집회를 연다”며 “매일 유튜버한테 연락해서 몇 시에 어디서 집회를 할지 물어보고 찾아가는 게 일과”라고 했다. 유튜버와 시민 사이에 실랑이가 생기면 경찰이 ‘집회 방해죄’ 내용을 시민에게 고지해야 하는데, 이 장면을 생방송으로 송출하는 유튜버도 있다고 한다. 경찰을 일종의 유튜브 영상 콘텐츠로 활용하는 셈이다.

유튜버들의 집회 신고는 홍대뿐 아니라 강남, 용산, 신촌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 유튜버는 대통령실 인근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57일째(15일 기준) 집회 신고를 하고 하루 8시간 생방송을 해왔다. 지난 14일 오후 찾은 이 집회 현장에서 유튜버들은 간이 의자에 앉아 마이크로 대화하며 유튜브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이들과 약 30m 떨어진 곳에는 빨간 경광봉을 든 경찰 10명과 기동대 버스 3대가 대기 중이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집회를 신고한 유튜버들은 구호를 외치는 등의 집회 요소 없이 매번 ‘토크쇼’ 같은 방송을 한다”고 했다.

이 유튜버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송출한 방송을 돈벌이로 이용하고 있다. 본지 기자가 집회 현장에서 만난 정치 유튜버들은 대부분 화면에 자막으로 계좌 번호를 띄워두거나 ‘자발적 시청료’를 달라며 후원을 유도하고 있었다. 한 정치 유튜버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계좌 번호를 게재했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 건대, 홍대 등 지하철역 주변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실시간 방송한다”며 “많은 응원과 동참 후원을 부탁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튜버가 방송을 위해 꼼수로 신고하는 집회더라도 일단 집회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들은 무조건 현장에 나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경찰은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사적 이득을 위해 경찰을 이용하는 건 문제”라며 “집회 신고를 하는 유튜버들이 기존에 어떤 식으로 방송을 해왔는지 확인해 집회가 아닌 방송을 하는 것이 확인되면 경찰이 보호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