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2개 군 병원이 응급 의료 지원에 나서면서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환자 중 일부는 군 병원을 찾고 있다. 환자와 가족들 사이에선 “전쟁통도 아닌데 의사를 찾아 군 병원까지 가야 하는 건가”라는 반응이 나왔다.

충남 천안에 사는 장정임(60)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쯤 낙상으로 양다리 부위 피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22일 본지 기자와 만난 아들 박진철(32)씨는 “어머니는 만성심부전증·부정맥·고혈압 등을 앓고 있었던 데다가 피부 괴사가 진행돼 위독한 상태였지만 순천향대병원, 단국대병원 등에서 거부당했다”며 “한 병원 관계자는 ‘오늘만 전문의 2명이 사직서를 냈는데 어떻게 환자를 받느냐’고 하더라”고 했다. 박씨는 “상처를 꿰매 줄 의사 하나 없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낙상으로 고관절이 부러진 임청재씨가 지난 20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장씨는 사고 이후 약 38시간이 지난 뒤인 22일 새벽 1시 경기도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는 “보호자 입장에서 갈 병원이 없다는 게 피가 말랐다”며 “당장 봉합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기저 질환이 있는 데다 45㎏도 되지 않는 어머니의 다리를 잘라내면 잘못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잘못되면 전부 병원을 못 구한 제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며 “환자의 생명을 구해야 할 대형 병원이 위독한 환자를 길바닥에 내몰 수 있는 거냐”고 했다.

지난 13일 낙상으로 고관절이 부러진 임청재(84)씨는 대형 병원에서 수술받지 못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첫 환자다. 딸 임모(52)씨는 “사고 이후 일주일이 지나 상태가 매우 나빴다”며 “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등에 문의했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실에 와도 대기만 할 것’이라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그는 “기저 질환이 많은 탓에 2차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뒤 여러 대학병원에 수없이 연락했지만, 파업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임씨는 군 병원에서 민간인 진료도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국군수도병원에 수술을 문의했다. 병원 측은 “무조건 환자를 받겠다. 오시라”고 했다고 한다. 임씨는 “아버지는 말기 암을 두 번이나 극복할 정도로 삶의 의지가 강하신 분”이라며 “수술만 받으면 사실 것 같은데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했다.

임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암을 치료해준 의사들을 존경해 서울대 의대에 시신 기부를 서약했다고 한다. 임씨는 “아버지는 의사 지시라면 사소한 것까지 모두 지키고 ‘사람 목숨을 살리는 의사는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했다. 그는 “아직은 파업으로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시지만, 배신감을 느끼실 것 같다”며 “이번 파업을 보면서 의사들은 자신의 직업을 그저 밥벌이로 생각하고 환자 목숨을 도구 삼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경기 광주시에 사는 이홍식(57)씨는 22일 오전 11시쯤 의식을 잃은 채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씨와 함께 병원을 찾은 친구 남병선(57)씨는 “이씨가 눈길을 걷다 미끄러져 난간 바깥으로 추락했다”며 “구급대원이 인근 큰 병원 두 군데에 전화를 걸어 응급실 진료가 가능한지 물었지만 의료 파업 때문인지 계속 거부당했다”고 했다. 남씨는 “친구가 계속 의식이 없어 정말 잘못될까 봐 애가 탔다. 군 병원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국 12개 군 병원에서 민간인 환자 20명이 진료를 받았다. 국군수도병원 11명, 국군대전병원 6명, 국군양주병원 1명, 국군포천병원 1명, 국군강릉병원 1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