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자동차는 2021년 4월부터 ‘패밀리 본드(가족 유대 강화)’ 제도를 시작했다. 직원들이 경제적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도록 24주간 종전 임금의 80%를 준다. 제도 시행 이후 남성 육아휴직자가 크게 늘었고, 직원 간 육아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한다. 사진은 볼보자동차가 홍보를 위해 찍은 이미지. /볼보자동차

스웨덴 예테보리 볼보자동차 글로벌 본사에서 근무하는 론 배너지(38)씨는 2019년 볼보로 이직한 뒤 육아휴직을 2번 썼다. 네 살 아들을 키울 때 6개월, 두 살 딸 때는 4개월을 사용했다. 볼보차는 2021년부터 육아휴직을 쓰면 아이 1명당 6개월(24주)간 기존 임금의 80%를 주는 ‘패밀리 본드’(가족 유대 강화) 제도를 운영 중이다. 기존 월급이 500만원이라면 육아휴직 땐 400만원을 회사에서 준다. 인도에서 기자였던 론씨는 “임금 대부분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쓰고 있다”며 “아이를 위한 휴직과 시간 내기가 자연스러운 회사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패밀리 본드’는 34국 볼보차 직원 4만6000여 명이 차별 없이 쓸 수 있다. 생산직과 사무직을 가리지 않고 가족 형태에 대한 제한도 없다. 동거, 동성 부모, 입양, 대리 부모 등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육아휴직은 주 단위나 일 단위로 쪼개서 쓸 수도 있다.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있으면 출근을 하고, 직접 보살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6개월이란 시간을 저축한 것처럼 빼서 쓴다. 육아휴직은 사용이 기본이고 쓰지 않으려면 오히려 사유를 상사에게 설명해야 한다. 1927년 스웨덴에서 설립된 볼보는 2010년 중국 업체에 인수됐으나 글로벌 본사는 스웨덴에 계속 남아 있다.

패밀리 본드는 스웨덴 정부가 육아휴직 때 최대 80%까지 임금을 보전해주는 것을 모델로 했다. 볼보가 진출한 국가의 육아 지원책과 결합해 패밀리 본드를 운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은 부모당 1년이다. 볼보는 회사 규정인 6개월이 아닌 한국 제도인 1년 휴직을 인정해준다. 그런데 한국 육아휴직 급여는 3개월간 최대 150만원이고 이후엔 120만원으로 떨어진다. 볼보 한국 직원의 기존 월급이 500만원이라면 6개월(24주)간은 80%인 400만원을 받도록 차액을 회사가 주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적용해준다.

패밀리 본드 도입 이후 남성 육아휴직자들이 늘었다. 2021~2022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은 5827명인데 이 중 남성이 70.3%로 여성(29.7%)보다 높았다. 볼보 직원의 성비(남성 75.5%, 여성 24.5%)를 감안해도 남성들이 보편적으로 육아휴직을 쓴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 임금이 여성보다 52%쯤 많다. 2022년 기준 남성 근로자는 평균 임금이 414만원인데, 여성 근로자는 271만원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가정 수입을 위해 여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경력 단절 등의 불이익을 겪기도 한다. 육아휴직 급여를 실제 월급에 가깝도록 정부·기업이 지원하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있다. 남녀가 동등하게 아이를 돌볼수록 아이를 낳는 여성의 심적 부담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볼보가 ‘일과 가정’ 병립을 제도화하면서 아이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생겨도 서로 이해하는 회사 분위기가 확산했다. 볼보의 이런 문화가 소셜 미디어 등을 타고 퍼지자 최근 경력직 면접에선 육아 지원 제도를 묻는 지원자가 늘었다고 한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세계 인재들이 볼보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모든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게 되자, 휴직 뒤 승진 불이익을 걱정할 일도 줄었다. 8개월짜리 딸을 둔 릴라(35)씨는 미국에서 컨설턴트 일을 하다 2018년 볼보에 합류했다. 그는 “여기선 육아휴직을 다녀와도 내가 어떤 업무를 다시 맡을지 알 수 있다”며 “미국 직장은 보수는 좋았지만,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어 아이를 낳기 어려웠다”고 했다. 우리나라 2030 여성들도 육아휴직 등으로 회사 경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걱정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원하는 직장을 얻었는데, 출산과 양육을 이유로 승진·보직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볼보는 패밀리 본드 도입 2년 뒤인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글로벌 기준 약 51조원)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6.4%로 현대차·기아(10.2%) 도요타(10.5%), 테슬라(9.2%) 등 경쟁 업체에 미치지 못했다. 볼보는 패밀리 본드에 소요되는 예산을 기업 이익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라도 볼보 수준의 양육 혜택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볼보의 제도는 복지 강국 스웨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