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장의 추억' - 지난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미국 뉴욕의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이 학교는 '한국식 교육'을 통해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합격생을 다수 배출해 "빈민가 아이들 성공의 사다리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운호 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한 아이스크림 가게.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Democracy Prep Harlem/Bronx High School)’ 학생 10여 명이 수박 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시스리애니 카스티오(17)는 ‘홍대 원조’라고 쓰인 아이스크림 가게 광고를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읽었다. 레게 머리를 한 키라라 로사다(17)는 “학교 수업 시간에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홍대를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며 거리 곳곳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는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저소득층 지역인 할렘 지역에 있다. 지난 2005년 ‘한국식 교육’을 통해 할렘가 청년들에게 꿈을 찾아주겠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오후 3시에 귀가하는 다른 학교와 달리 오후 5시까지 자율 학습을 시킨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한국 문화·예절을 배우며, 교복도 입는다. 2007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수 합격했다.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의 성공을 두고 미국에서는 “한국식 교육이 저소득층 아이들 성공의 사다리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의 이번 수학여행은 자신들이 미국에서 벤치마킹한 한국식 교육을 직접 보고, 문화를 체험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고 한다. 10~11학년(고교 2~3학년) 500여 명 중 한국어 우수자로 선발된 70여 명이 한국 방문 기회를 얻었다.

카스티오는 재작년부터 한국어를 배웠고, 이번 수학여행에 선발되려고 지원서도 한국어로 썼다. 카스티오는 “한글을 익히며 한국에는 모음 하나하나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을 만큼, 역사와 조상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고 배웠다”며 “나 역시 뿌리를 잊지 않고 내가 살아온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대학에 진학해 정신의학과 약학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카스티오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다. 그는 “한국 고등학생들은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일이 많다고 배웠다”며 “나도 분 단위로 공부 계획표를 짜고 미분적분학과 물리학 등 어려운 과목을 예·복습한다”고 했다.

로사다는 “할렘에 살며 어려운 환경 때문에 범죄에 손을 대는 이웃들을 봤다”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서 형사법과 범죄심리학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는 프린스턴 대학교를 찾아가 한국인 재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 방법도 전해 듣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며 “직접 한국에 오다니 정말 꿈만 같다”고 했다.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미국 뉴욕의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브롱스 고등학교 한국어 교사 임지민(37)씨는 “학생 대부분이 흑인·히스패닉 등 저소득층 가정 출신이고, 한 부모 가정 비율도 20%가 넘는다”며 “마약을 해본 학생들도 있고, 주위 친구 중 갱단 멤버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 학교 교사로 일한다는 건 단순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이상을 의미한다”며 “학생들의 생활 습관을 바꿔주고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임씨는 “하지만 학생들이 작은 것부터 이뤄나가며 성취감을 느끼고 점차 공부에 맛을 들이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처음 들어왔을 때 어둡던 학생들의 눈빛이 학교를 다니면서 반짝이는 걸 보면 언제나 힘이 난다”고 했다.

화학 교사 켈리 버크(28)는 “뉴욕 어디에도 이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명감을 가지고 교사로 지원했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학교 모토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생들이 대학에 갈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며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학생들 모습을 보면 교사 일이 무척 보람차다”고 했다.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지난 20일부터 27일까지 8일간 계속됐다. 서울은 물론 대구 등 지방도 방문했고, 한국 대학 축제도 찾았다. 자매결연 학교인 청도 이서고등학교에서는 한국식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봤다. 학생들은 “한국 친구들과 K팝도 따라 부르고 함께 고민도 나눴다”며 “한국의 추억과 기억을 간직하며 미국에 돌아가서도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