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려는 학생 보호자 일동 회원들이 지난 5월 3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충남(24일)에 이어 서울(26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충남과 서울을 포함한 6개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돼왔지만 이제 4곳만 남은 셈이다. 충남교육청은 대법원 제소를 준비하고 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폐지에 반발하며 천막 농성을 벌였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은 조례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도 퍼졌다. 지난 4월 29일 광주에선 1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조례 폐지를 요구하며 시의회에 주민조례 청구를 제출했다.

서울·충남 폐지로 4개 교육청만 남아

학생인권조례는 머리와 복장 자율화, 체벌 금지 등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교육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명시한 것이다.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이후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등 6곳에서 제정됐다.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개정·폐지 움직임에 불이 붙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을 추진하라”고 언급했으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돼 교권은 급격하게 추락했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며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교권 침해와 관련해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충남과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 개정이 아닌 폐지가 이뤄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진보 교육감이 있는 지역의 도·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 주도로 폐지안이 가결되면서 학생인권조례가 정쟁으로 비화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29일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두고 “학생 인권에 대못을 박는 정치적 퇴행”이라며 “민주당은 학생과 교사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관련 입법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지난 4·10 총선에서 ‘학생인권법’을 공약한 바 있다.

조례 없는 교육청의 인권보호 대안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학생 인권은 보장받지 못할까? 조례의 유무가 학생 인권에 영향을 미친다면 조례가 없는 지역에선 인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차이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조례가 없는 지역의 교육청 관계자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있어야만 학생 인권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폐지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는 ‘대한민국헌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해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충남 학생인권조례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 양심·종교의 자유 등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기도 하다. 기본권은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선 학생 인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실행되고 있었다. 부산은 ‘학생 자치 및 참여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통해 학생의 자치 활동을 보장한다. 울산교육청은 학생인권지원센터를 운영해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학교에서의 갈등 상황을 조정한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조례 안에 권리가 있는 게 아니다”라며 “조례가 없지만 헌법이나 아동권리협약에 나온 내용으로 기본권 침해가 있는지 판단한다”고 말했다.

경북에는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와 학생의 학습권 보장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교육활동 보호 및 학습권 보장 조례’가 있다. 경북교육청이 운영하는 ‘인권교육 현장지원단’은 1년에 한 번씩 모든 학교의 규칙을 모니터링하며 인권 침해 요소가 있을 때 개정을 요구하거나 컨설팅을 진행한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인권조례에 상응하는 여러 방안들을 시행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이미 사회적 인식이 변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더라도 학생 인권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5년 차 교사는 “사회적 인식이 학생인권조례의 유무와 상관없이 학생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교사는 학생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바뀐 것 같다”며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진다고 해서 학생들의 태도나 교사의 지도방식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모(27)씨는 “요즘에는 학생들이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면 학교를 벗어났을 때 모르는 사람들이 이름을 알 수 있어 인권 침해라는 얘기가 나와 이름표를 달지 않는 학교도 꽤 많다”며 “학생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서 인권을 침해당한 학생을 구제하는 제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5월 7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예상되는 변화에 관한 답변’을 제출한 서울시교육청·충남교육청은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권리구제 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고,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조치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인권옹호관’ 근거 사라졌다”

서울과 충남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인권을 침해당했거나 침해당할 위험이 있는 경우 누구든지 학생인권옹호관에게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사건을 조사한 학생인권옹호관이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가해자·관계인·교육감에게 학생인권침해 행위의 즉시 중지, 학생인권 회복 등 필요한 구제조치 등을 권고할 수 있다.

충남교육청 김지훈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해서 학생인권옹호관이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권리 구제를 할 수 있다”며 “조례 폐지로 학생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구제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옹호관은 “지난해 진행된 인권 침해 상담 186건 중 구제 신청으로 이어진 건 17건이며 (구제 조치를) 권고한 경우는 1건”이라며 “학생인권옹호관의 중재 기능이 사라지면 보호자는 아동학대 등으로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조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인권과 교권을 통합한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3일 입법예고한 이 조례안은 학생, 교직원, 보호자의 권리와 책임을 규정하며 이와 관련해 기본계획을 세우고 연수, 실태조사 등을 진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앞선 경기도 교사 김씨는 “교사에게는 아동학대법을 손보는 것이 좀 더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이라며 “아동학대법이 모호해서 교사들의 교육행위가 침해받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를 떠나서 시민의식이 좀 더 성숙해져야 할 것 같다”며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학교를 보육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으로 생각하고 교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에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인권조례에 성평등 조항이 포함된 것처럼, 이번에는 사회적 합의 없이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다”고 지적하며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 자체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폐지하기보다는 보완하고 이와 관련한 학생 교육을 진행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박 교수는 “이미 아동학대법이 시행 중이고 인권 의식도 높아졌기 때문에 조례 폐지가 학생 인권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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