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 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 훈련병이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온라인 젠더갈등으로 비화했다.

사건의 본질은 명백히 성별과 무관한 ‘규정을 무시한 상급자의 갑질’이었음에도, 그 갑질 상급자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뭘 모르는 여성 상급자가 사람 잡았다’는 식의 여혐론이 번진 것이다. 해당 중대장에 대해 ‘극단적 페미니스트였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분노를 부추겼다.

군 당국 대처도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가해자인 중대장에게 ‘멘토’가 배정돼 심리 안정을 돕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을 숨지게 하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30일 육군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육군 강원도 모 부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다가 쓰러진 훈련병 1명이 치료 중 이틀 만인 지난 25일 숨졌다. 숨진 훈련병은 당시 중대장 지시에 따라 완전군장 상태로 구보·팔굽혀펴기·선착순 달리기 등을 반복하다가 40분만에 쓰러졌다. 군기훈련 규정에 따르면 완전군장 상태에서는 걷기만 시키도록 돼 있다.

더욱이 완전군장은 통상 무게 20kg 이상인데, 여기에 무게를 늘리기 위해 책까지 여러 권 넣으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은 사망한 훈련병이 군기훈련을 받은 이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제보에 따르면 6명의 훈련병이 지난 22일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다음 날 얼차려를 받았다고 한다”고 주장한다.

군 수사 당국은 해당 부대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게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민간 경찰로 사건을 이첩했다.

육군 훈련병 사망사건 발생한 강원도내 모 부대모습. /뉴스1

이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지시한 중대장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급자 가혹행위’였던 사건의 본질은 온라인에서 급격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해당 중대장의 실명과 나이, 출신 대학·학과, 임관 연도, 사진 등까지 신상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여군이라 완전군장을 안 해봐서 무리한 군기훈련을 시켰다’ ‘완전군장 구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여군이 남성 훈련병을 죽였다’ ‘해당 중대장이 평소 남성 혐오 사상을 가지고 있어 가혹한 군기 훈련을 시켰다’ 등의 주장이 퍼져나갔다.

과거 국방TV에 소개된 장면. /온라인 커뮤니티

과거 국방TV에 소개된 육군사관학교 여성 생도의 군장 내용물을 남성 동료들이 나눠서 들어주는 영상도 함께 돌았다. 2017년 ‘여군의 행군방법’이란 제목으로 총만 한 자루 달랑 들고 행군하는 여군의 모습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됐던 것도 재조명됐다. 이를 근거로 여군 무용론이 나왔다.

일부 사이트에선 ‘남자라서 죽었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과거 여성단체들이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한 ‘교제 살인’에 주로 쓰던 구호 ‘여자라서 죽었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28일 군 당국이 ‘해당 중대장에게 멘토를 배정해 심리 상태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분노는 더욱 커졌다.

온라인엔 “피해는 훈련병이 입었는데 중대장이 피해자로 둔갑되어 가고 있다” “범죄자 인권보호에 진심인 나라” “훈련병 동료들한테나 멘토를 배정해라” 등의 글이 올라왔다. “고문치사 혐의를 적용하라” “명백한 살인” 등의 주장도 나왔다.

일부 네티즌들은 ‘멘토’ 관련 기사를 퍼나르면서 ‘여성 중대장’이라는 표현을 일부러 강조했다. 여성이라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뉘앙스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조선닷컴 통화에서 “통상적으로 군에서는 사건에 연루된, 심지어 가해자라 하더라도 극단적 행동의 우려가 있는 경우 ‘전우조’를 배정해 관리한다”고 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군의 조치를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포털사이트 검색 화면

온라인에선 자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 규정을 잘 지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 “간부 교육과정에서 규정을 제대로 못 가르친 군대 조직 자체의 문제” “이 사건이 여군 무용론으로 흘러가면 안 된다” 등의 의견이었다. 여군 출신으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은 “몇몇 문제로 싸잡아 여군 욕하지 마라. 나라 위해 최선을 다한 시간이 후회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 육군은 “해당 중대장과 부중대장은 관련 혐의가 확인되면서 민간 경찰 이첩 하루 전인 27일 오전 8시부로 직무 배제했다”며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