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금천구의 한 유치원에서 주부 봉사단이 '지구를 살리자' 연극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김영우 기자

“어린이 여러분, 페트병은 어떻게 버려야 할까요?”

지난 9일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 금천구의 한 유치원. 이곳에서는 유치원생 130여명이 건물 1층 강당에 앉아 60대 주부 5명의 연극 공연을 보고 있었다. 공연에 나선 이들은 금천구 ‘무지개봉사단’의 회원 김성남(68)씨, 노갑임(64)씨, 정현숙(64)씨, 고채원(62)씨, 이명희(61)씨.

이날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소품을 만들며 준비한 연극으로 아이들에게 분리수거 방법을 알려줬다. 연극에서 쓰레기통 역할을 맡은 봉사단 회장 김씨가 아이들에게 페트병이나 컵라면 용기 등을 보여주며 “이건 어떻게 버려야 할까요?”라고 묻자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페트병은 비닐을 떼어야 해요” “컵라면 용기는 씻어서 버려야 해요”라고 외쳤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연극을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우리 어린이 여러분들에게는 가르칠 게 없다”며 “다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답을 맞힌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박수를 쳐주었다.

지난달 24일 연극 연습 현장에서 '무지개봉사단' 회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현숙씨, 김성남씨, 고채원씨, 노갑임씨, 이명희씨. /김영우 기자

지난 2019년 처음 결성된 무지개봉사단은 환경보호에 관한 연극을 만들어 작년부터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봉사단이 연극을 만들기로 한 것은 ‘남들과는 다른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한다. 김씨는 “금천구에 등록된 70여개 봉사 단체가 대부분 명절맞이 음식 나누기 등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며 “남들이 하지 않는 봉사활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환경에 관한 연극을 선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4월이나 5월에도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는 걸 보며 기후 위기를 체감했다는 김씨는 “하루는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는데, 먹던 음식이 묻어 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마스크가 한데 섞여 버려져 있는 것을 봤다”며 “사람들에게 연극으로 분리수거를 제대로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연극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처음 김씨에게 연극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봉사단 회원들은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봉사단 회원인 노씨는 “살림만 하던 내가 연극을 만들어 올릴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엔 거절도 했다”며 “김씨가 할 수 있다고 여러 번 설득해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고씨 역시 “처음엔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그럴 때마다 김씨가 ‘작은 것부터 해보자’며 북돋아줬다”고 했다.

김씨의 설득 끝에 작년 4월부터 연극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연극을 준비하면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점점 빠지는 것이었다. 처음엔 마음이 맞는 8명이 시작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연습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결국 5명만 남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남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계기가 됐다. 정씨는 “우리 5명은 ‘내가 나가면 연극 봉사가 흐지부지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오히려 책임감을 느끼고 연극 연습에 더욱 열심히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금천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주부 봉사단이 '지구를 살리자' 연극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김영우 기자

5개월 동안 대본을 쓰고 소품을 만든 이들은 작년 9월 서울 금천구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상대로 첫 공연을 선보였다. 정씨는 “첫 공연 전엔 긴장도 많이 했지만 어르신들 호응이 좋아 긴장이 금세 풀렸다”며 “공연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해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공연 이후 어르신들의 분리수거 습관이 바뀌었다는 후문도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공연을 했던 주간보호센터를 공연 이후에도 몇 번 찾았는데, 어르신들이 쓰레기를 건네주면서 분리수거가 가능하도록 미리 분리해주셨다”며 “공연 전에 찾았을 땐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주셨던 걸 생각하면, 내 공연이 누군가의 일상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이들이 유치원에서 연극을 선보인 것 역시 어르신들을 상대로 공연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작년 9월 첫 공연 이후 어르신들을 상대로 2차례 더 연극을 선보였는데, 공연을 본 유치원장이 “우리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도 분리수거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며 김씨에게 연락해 공연을 요청하며 성사됐다고 한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고씨는 “아이들 앞에서 공연할 생각을 하니 단어 하나하나가 더 신경 쓰여 긴장이 됐다”면서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분리수거 방법을 잘 알고 있어 놀랐다”고 했다.

봉사단은 앞으로 다른 연극도 만들어 무대에 올릴 생각이라고 한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