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일레마 알레유가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신미식 사진작가

“이분들의 가슴엔 대한민국의 심장이 있습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신미식(62)씨는 지난달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누비며 6·25전쟁 참전 용사 52명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유일의 6·25 지상군 파병국이다. 당시 파병된 에티오피아군 3518명은 253회 전투를 전승(全勝)했다.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다. 현재 생존한 참전 용사는 62명이다.

신미식씨

아프리카 전문 사진작가인 신씨는 2008년 EBS 다큐멘터리 촬영차 에티오피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한 카페에서 어느 사람이 “한국에서 왔느냐. 우리 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였다”고 했다. 당시 신씨는 에티오피아가 6·25 때 한국에 파병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조차 몰랐던 내가 부끄러웠다”며 “언젠가 이분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의 빚’이 그때 생겼다”고 했다.

그러다가 작년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용사 후원회’ 산하 한글학교 학생들과 연이 닿아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참전 용사들은 70여 년 전 전쟁터에서 세계적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온 그를 보며 감격했다. 강원도 화천 전투에 참전한 페카두 아쌈뉴(89)씨는 ‘화천’ ‘화천’을 연발하며 신씨의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건강 문제로 침대에 누워 생활하던 일레마 알레유(96)씨는 신씨가 온다는 소식에 벌떡 일어나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했다. 알레유씨가 “스무 살 무렵 찾았던 한국이 발전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내 조국 같아 뿌듯하다”고 말할 때 신씨는 마음이 아려서 사진 작업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은 1974년 쿠데타로 군주정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의 격랑에 휩쓸렸다. 우방이자 동맹국인 북한과 싸웠다는 이유로 연금도 받지 못했고 참전 사실조차 20년 가까이 숨겨야 했다. 1991년 공산 정권이 붕괴하고 한·에티오피아 관계가 발전하면서 6·25 기념사업도 활성화됐다. 하지만 이젠 생존 용사가 거의 남지 않은 현실에 신씨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신씨는 “살아계신 62분 모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했는데 수도에 계시거나 접촉이 가능한 분만 촬영해서 아쉽다”며 “헌정 사진집을 신속하게 제작, 참전 용사들께 전달해 드릴 것”이라고 했다. 빠르면 가을쯤 한국과 에티오피아에서 사진전도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