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 하고, 특히 팬플룻을 불러줬어요. 친구들한테 ‘엘 콘도르 빠사(El Condor Pasa)’를 연주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2일 새벽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교차로 교통사고 현장에서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일 사망자 9명을 포함해 총 13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대형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서울시 공무원 김인병(52)씨의 친구 권모(51)씨는 2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김씨를 회상하며 이 같이 말했다. 평소 팬플룻을 불렀던 김씨는 연주 발표회도 하고, 서울시 공무원 연수에 가서도 팬플룻을 연주했다고 한다.

권씨는 “어제 사고가 난 곳은 나도 평소 김씨를 만나기 위해 자주 들렀던 곳”이라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괜찮냐’는 연락을 했는데 오늘 아침까지 대답이 없더라. 그래서 전화해보니 김씨의 별세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장례식장으로 왔다”고 했다.

김씨의 큰 형인 김윤병(68)씨는 갑자기 떠난 동생을 생각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큰 형 김씨는 “동생은 1972년 우리 7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며 “늦둥이라 젖도 나오지 않고, 전깃불도 안 나오는 시골(안동)에 살아 쌀을 뭉개서 겨우 먹여 키웠다”고 했다.

큰 형에 따르면 동생 김씨는 중학교 2학년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다 접촉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김씨는 인대가 나가고 한 쪽 눈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 됐다.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3명 사상자가 발생,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뉴스1

김씨는 “동생은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혼자 대구의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서울로 상경해 공무원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생을 ‘매일 바빴던 동생’으로 회상했다. 김씨는 “명절에도 너무 바빠서 못 내려온다고 하더라”며 “서울시청사 관리를 담당하는 동생이 ‘서울시는 시위가 너무 많아서 시위 관리일로 바쁘다’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은 상사에게 ‘잘했다’는 칭찬으로 살던 사람”이라고도 했다.

큰 형이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은 어젯밤이었다. 3일 후 있을 어머니 제사를 의논하려고 했는데, 돌아온 것은 ‘동생이 심정지로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큰 형 김씨는 “평소에도 동생이 야근을 했는데, 시청 인근에서 빠르게 저녁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려다 사고가 났구나 싶었다”고 했다.

큰 형 김씨는 “너무나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동생이 떠났다”며 “형으로서 아무 것도 도와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김씨는 “이틀 후가 어머니 제사인데, 어떻게 지내야하나…”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