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 이승규 노산 이은상 기념사업회 기자회견. /뉴시스

경남 창원시가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 시인의 시 ‘가고파’를 지역 축제 명칭에 넣을지를 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창원시의회는 오는 15~22일 임시회에서 ‘마산국화축제’ 명칭을 ‘마산가고파국화축제’로 바꾸는 조례를 처리할 예정이다. 그러자 지역의 야권(野圈) 의원과 시민 단체들이 “친(親)독재 전력의 이은상 시 제목을 ‘민주 성지 마산’의 축제명에 넣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창원 출신인 이 시인은 1932년 고향 마산(현 창원 마산합포구)을 그리며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시 ‘가고파’(1932)를 썼다. 1933년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곡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3·15의거기념사업회,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마산을 독재 부역 도시로 만들 것인가”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이은상은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전국 유세를 다니며 독재자 이승만을 찬양하고, 박정희 때는 유신 선포 지지 성명을 냈으며, 전두환 때는 전두환에게 찬사를 보내고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문순규 시의원도 “창원 대표 축제에 이은상의 시 제목을 넣을 수는 없다”고 했다.

노산 이은상 시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반면 남하 이승규, 노산 이은상 기념사업회는 이 시인이 1960년 4월 15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3·15 마산 의거의 근본 원인을 묻자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라고 답변한 것을 일각에서 ‘3·15 폄훼’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당시 비상사태 때 시위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독립 유공자이자 당대 최고 문호를 폄훼하는 게 민주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 시인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됐고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인물이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유공자 묘역에 안장돼 있다. 국민의힘 소속 남재욱 시의원은 “고향과 조국을 그리는 이은상의 시 ‘가고파’는 그 자체로 독립운동”이라고 했다.

창원시 안팎에선 2018년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 진영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이런 논쟁이 본격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산가고파국화축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공모를 통해 결정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까지 13년 동안 유지됐다. 그런데 2019년부터 명칭에서 돌연 ‘가고파’가 빠졌다. 당시 창원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축제 명칭 간소화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지만, 지역에선 ‘민주당 소속 시장의 입김이 반영된 것 아니냐’ 같은 말이 나왔다.

이 시인은 국립서울·대전현충원의 현충탑에 새겨진 현충시를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란 구절이 석판에 조각돼 있다. 한 창원 시민은 “이 시인의 공과(功過)는 역사적 평가 대상으로 넘어간 것 아니냐”며 “무조건 빼고 없애자는 식이라면 현충탑도 부숴야 하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