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인 17일 오후 서울시 중구 장충동 자유총연맹 광장에서 대형 태극기가 이승만 동상 너머로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76주년 제헌절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7월 17일은 1948년 제헌 국회에서 헌법이 제정 및 공포된 날로, 1949년부터 국경일이 됐다. 그러나 2005년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근로 시간 감축으로 인해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규정이 개정돼 2008년부터 공휴일이 아닌 반쪽짜리 ‘무휴(無休) 국경일’이 됐다. 정부가 지정한 5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중 유일한 무휴 국경일이다.

이후에도 국회에서 여러 번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공휴일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빈번히 무산됐다. 제헌절을 앞두고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헌절이 지난 뒤 국민 관심에서 벗어난 것이 컸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윤호중 의원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 여야(與野)가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 여론도 공휴일 재지정에 찬성하고 있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2017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 78.4%, 반대 16.3%로 찬성이 높았다. 헌법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국회의 움직임을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오전 광주 북구직장어린이집 원생들이 태극모양 손도장을 찍고 있다. /김영근 기자

◇美·日도 제헌절은 공휴일…한국도 재지정 필요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는 “제헌절의 공휴일 재지정은 당연한 것”이라며 “제헌절은 국민 대표인 제헌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제정·공포한 날인 만큼, 우리나라에는 정치 이념 문제 등으로 없는 ‘건국절’과 동일한 위상을 갖는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 선진국들도 제헌절을 공휴일로 하고 있다”며 “단군이 하늘을 열었다는 개천절도, 민족의 풍습이라며 구정도 공휴일인데 제헌절이 제외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미국은 1787년 헌법제정회의가 당시 수도 필라델피아에서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헌법안을 채택한 9월 17일을 제헌절(Constitution Day)로, 일본은 1947년 헌법이 시행된 날인 5월 3일을 헌법기념일로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북한도 1972년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본격화된 ‘사회주의 헌법’이 채택된 12월 27일을 헌법절로 기념하고 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기초가 되는 헌법을 만든 일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어떤 나라도 나라의 바탕이 된 헌법 제정일을 경시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지난해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제75주년 제헌절'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대한민국 기틀 놓은 헌법 의미 퇴색…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으로 전환해야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헌법의 의미를 국민들이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와 전환점이 필요하다”며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라면 국민은 다른 역사적인 사건에 비해 제헌절의 비중이 작다고 느낄 수 밖에 없어 국민 의식 개선 측면에서도 재지정은 필요하다”고 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도 제헌절의 공휴일 재지정을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임 교수는 “다른 공휴일을 해제하더라도 제헌절은 다시 공휴일로 포함해야한다”며 “헌법은 곧 국가인데,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은 ‘헌법 제정 의미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꼴”이라고 했다. 이어 “제헌절이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은 국가의 최고(最高)법이자 최고(最古)법인 헌법을 무시하는 행태”라며 “공휴일로 재지정해 국민이 헌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에 중립 의견을 밝힌 신평 변호사는 “헌법은 모든 법의 최상의 규범으로서,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다만 헌법의 중요성과 공휴일 지정 사이의 명백한 상관 관계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호주, 독일, 스위스 등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헌절이 무휴 국경일이다.

지난해 한글날인 10월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뉴스1

◇제헌절 공휴일로 재지정되려면…한글날은 어떻게?

세종이 한글을 선포한 한글날(10월 9일)은 1949년부터 1990년까지는 공휴일이었다가, 1991년부터 2012년까지 공휴일이 아니었다. 10월에 개천절과 추석 휴가로 공휴일이 많아 국군의날(10월 1일)과 함께 제외된 것이다. 이후 2005년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된 후 한글학회 등 시민단체들이 한글날 공휴일 제정을 촉구했다. 2012년 12월 관련 규정 개정안이 통과해 2013년부터 공휴일로 전환됐다.

윤호중 의원이 발의한 공휴일법 개정안과 나경원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각각 지난 15일과 16일 국회에 접수된 상태다. 두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는 “제헌절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공휴일로 재지정해야 한다” “제헌절이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됨으로 인해 국민 인식이 저하됐다”고 적혔다. 임지봉 교수는 “반드시 이번 국회가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야 한다”며 “국회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