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구군 대암산의 "용늪"에 서식하는 끈끈이주걱. /전기병 기자

무더위와 장마로 벌레가 기승을 부리자 각종 식충(食蟲)식물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정모(44·여)씨는 지난 5월 에셀리아나(벌레잡이제비꽃류)와 필리포미스(끈끈이주걱류)라는 식충식물 두 종을 분양받았다. 최근 집 안에 뿌리파리, 러브버그 등 날벌레들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동네 꽃집에 가서 ‘벌레 잘 잡는 놈으로 달라’고 했다”며 “실제로 러브버그나 모기 같은 벌레들이 한가득 잡히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러브버그 민원(5600건)은 2022년(4418건)보다 약 27% 증가했다. 이상기후로 인해 벌레 떼가 급증하면서 일부 시민이 10여 종에 이르는 각종 식충식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필리포미스로 대표되는 끈끈이주걱류는 잎에서 향기가 나는 점액질을 분비해 벌레를 유인, 소화액을 내뿜어 영양분으로 흡수한다. 필리포미스는 연분홍색 꽃을 피우기 때문에 미관상으로도 좋아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에셀리아나·아그나타 등 벌레잡이제비꽃류 역시 점액질을 분비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가장 흔하게 알려진 식충식물 ‘파리지옥’은 잎에 난 감각모 세 쌍에 벌레가 닿으면 잎을 닫고 소화액을 분비하는데, 벌레를 잘 잡지는 못한다는 평가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김모(31·여)씨는 “반려견이 있어 벌레 퇴치제를 쓰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면서 “그러던 중 식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식충식물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4월부터 아그나타를 키우고 있는데, 러브버그나 날파리가 하루에 최소 5마리씩은 잡힌다고 했다. 그는 “결과가 만족스러워 화분 수도 늘리고, 카펜시스·필리포미스 등 다른 종도 추가했다”고 했다.

경기 광주시 한국벌레잡이식물원 관계자는 “보통 식충식물 구입 문의는 한여름에 종종 있었는데 이상기후 탓인지 올해는 5월부터 찾는 손님이 많다”며 “식충식물 매출이 작년보다 50%가량 늘었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한국화훼농협 식물판매처 관계자는 “어떤 종이 가장 벌레를 잘 잡는지 문의하시는 분이 많다”며 “첫 구매 이후 만족한다며 재방문하는 손님도 많다”고 했다. 임기병 경북대 원예과학과 교수는 “식충식물은 본래 극소수 마니아층에서 관상용으로 소비해왔는데, ‘벌레 퇴치’를 목적으로 한 재배는 기존의 화훼 문화와는 다른 양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