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SM엔터테인먼트(SM) 시세 조종’ 혐의를 받는 카카오 창업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3일 오전 1시쯤 구속됐다.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진행한 재판부는 “증거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오후 2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 여부를 가리는 영장 실질 심사를 진행했다. 이날 오후 1시 43분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즉결법정 출입구 앞에 김 위원장을 태운 검찰 긴급호송차가 도착했다. 회색 넥타이에 남색 양복 차림으로 차량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SM 시세 조종 혐의를 인정하느냐” “주식 흐름을 어떻게 보고받았나 “투자심의위 카톡방에서 보고받은 것 인정하나” “어떻게 소명할 예정인가” 등 취재진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4시간 동안 영장 실질 심사를 받은 뒤 오후 6시쯤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왔다. 출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퇴정할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어떻게 소명했냐” “원아시아파트너스와의 공모 관계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 등 취재진들의 물음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법원을 빠져나온 김 위원장은 검찰 호송차를 타고 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서울 구로구의 남부구치소로 이동해 기다렸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장대규)는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에서 경쟁 상대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12만원)보다 높게 고정시키려고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적용해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17일 청구했다. 작년 11월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김 위원장을 검찰 송치한 지 8개월 만이었다.

검찰은 22일 영장 실질 심사에서 수백 쪽 분량 발표 자료와 1000쪽 이상의 서면 의견서를 통해 김 위원장의 구속 필요성을 역설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당시 김 위원장의 시세 조종 공모 혐의를 입증하는 충분한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2월 28일 카카오그룹 계열사를 통해 1300억원 상당의 SM 주식을 매입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중점으로 영장 청구서를 작성했다.

다만 지난해 2월 16~17일, 27일 카카오가 사모 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1100억원을 투입해 SM 주식을 매입한 내용은 영장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검찰이 김 위원장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공모했다는 혐의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4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회장은 이날 오전 법원의 보석 신청 인용으로 풀려났다.

이달 초 검찰 소환 조사 이후 김 위원장 측은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검찰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또 지난 18일에는 카카오 판교아지트에서 임시 그룹 협의회를 열고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어떤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지 않은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했지만 결과는 구속이었다.

김 위원장 구속으로 시가 총액 22조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그룹의 쇄신 작업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CA협의체의 경영쇄신위원장을 직접 맡았다. 기존 자율 경영 체제에서 벗어나 중앙 집권 체제로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쇄신의 신호탄을 올린 것이다. 이후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카카오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등 주요 보직 인사를 실시하고, ‘선택과 집중’을 위해 부진한 사업을 빠르게 정리해 왔다.

그 결과 147개였던 계열사를 1년여 만에 124개로 줄이며 ‘몸집 줄이기’에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김 위원장 구속에 대비해 정신아 대표는 지난 18일 CA협의체 소속 주요 계열사 CEO 등이 모인 임시 그룹 협의회에서 “엄중한 현실 인식하에 꼭 해야 할 일들을 과감히 실행해 갈 것”이라며 경영 쇄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지금까지 쇄신을 이어온 ‘중심축’이 사라진 만큼 변화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카카오의 더 큰 위기는 미래를 이끌어갈 성장 동력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카카오는 올해 안에 새로운 AI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했을 뿐, 출시 일정은 물론 서비스의 방향성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플랫폼 주도권을 유튜브에 내주며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점에 미래 성장 동력까지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든 시장에 보여줘야 할 시점에 그룹의 수장이 자리를 비운 충격은 나비효과처럼 카카오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