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황제(皇帝)’로 불렸던 1세대 조폭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92)씨가 지난 10일 사망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씨는 숭실고등보통학교를 중퇴했고 6·25전쟁 당시 1등 상사로 근무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4년 상경한 뒤 명동 중앙극장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우미관 김두환, 명동 이화룡, 종로 이정재가 3파전을 벌일 때였다. 1958년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1975년 1월 범호남파 조양은 조직과 ‘사보이 호텔 사건’으로 충돌했고, 이후 삼청교육대에 수용됐고 관광호텔 카지노 사업으로 수입을 올렸다.

11일 오전 본지 기자들이 찾은 서울아산병원 신씨의 빈소엔 조폭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 수십 명이 도열 중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 등 정계 인사가 보낸 조기와 가수 설운도·태진아씨의 조화 리본이 보였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74)씨는 ‘선교사’라는 직함으로 조화를 보냈다. 서울시는 “오 시장 집안 사람 부탁을 받아 보낸 조기”라고 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5시 23분쯤 조기를 회수했다. 일부 조문객은 ‘상가에서 왜 조기를 치우느냐’고 항의했다.

이날 부산을 비롯, 경남 밀양, 전북 익산, 충북 제천 등에서 전현직 조폭들이 대규모로 몰려왔다. 10~11일 2000명가량 조문객이 왔다고 밝혔다. 관할 경찰서인 서울 송파서는 사복형사 수십 명을 장례식장 곳곳에 배치했고, 서울청에서도 인력을 파견했다. 조문객들은 신씨를 ‘아버지’ ‘큰 어르신’으로 지칭했다. 김선태(65)씨는 “한 번도 안 아프시고 병치레 없이, 끝까지 건달답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모(61)씨는 본명을 묻는 질문에 “검찰청에 하도 많이 들락거렸으니, 거기에 내 이름을 묻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했다.

이성만(73)씨는 “정치인들 부탁을 받고 건달들을 동원, 여의도, 장충동 등 선거 유세 지역서 선거운동도 시켰다”고 했다. 홍인수(73)씨는 “우리 같은 협객(俠客)은 마약·포주·사채업·도박에 일절 손대지 않는다”고 했다. 발인은 12일 오후 1시 30분으로 예정됐다. 측근들은 “어르신 가시는 마지막 길에 블랙 세단 100대를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조문객들은 “낭만과 주먹을 갖췄던 이 시대 마지막 협객이 떠났다”며 “우리는 돈과 쾌락만 좇는 MZ 조폭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상당수 사람들은 롤렉스 시계나 에르메스·구찌 벨트 등 장신구를 갖추고 있었다. 경찰청은 이날 지난 3월 18일부터 7월 17일까지 조폭 특별 단속을 벌여 1723명을 검거하고 281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 단속 때와 비교하면 8.4%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