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서울대 경제학부는 오는 9월 2학기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개설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는 1989년 김수행(1942~2015) 교수 부임 이후 35년간 명맥을 이어왔다. 공산당 선언(1848)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쓴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며 유지된다고 봤다. 노동자가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혁명’으로써 자본주의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시각은 20세기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경제학부는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 경제학’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 등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모두 개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져 강의 수요가 매우 낮다”고 했다. 경제학부는 강의 수요와 공급 상황을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실제 마르크스 경제학 수강생 숫자는 감소 추세였다. ‘정치경제학 입문’은 2021년 2학기 93명이었으나 올 1학기에는 30명이었다. 1990년대 수강 정원이 200명을 웃돈 ‘마르크스 경제학’은 지난해 2학기 수강생이 4명뿐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1988년, 서울대에선 “주류 경제학 강의만 들으라는 것이냐”는 학생들의 거센 시위가 있었다. 대자보 부착은 물론이고 서명운동·집회·수업 거부가 이어졌다. 1989년 1학기에 런던대 박사 출신 김수행 교수가 부임해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최초로 개설했다. 하지만 2008년 김 교수 정년 퇴임 이후 서울대 경제학부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교수로 뽑지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경제학엔 균형 잡힌 관점이 필요하다”며 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수행 교수 퇴임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해온 강성윤 강사는 최근 서울대 인터넷 게시판에 “경제학부가 마르크스 경제학 분야를 배제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며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의 명맥이 서울대에서 완전히 단절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경제학부는 향후 논의에 따라 내년에 강의를 재개설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내 반응은 엇갈린다. 경제학부 재학생 임모(25)씨는 “취업에 필요한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경제통계학 등 주요 과목을 듣기도 바쁘다”고 했다. 일부 학생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붕괴하거나 중국·북한 등도 자본주의로 돌아가는데 굳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들어야 하느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선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선 “국립 종합 대학에선 학문 다양성도 실용성 못잖은 가치”라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