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프랑스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은·동메달을 딴 허미미(왼쪽)와 동메달을 딴 김지수가 14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훈민 기자

“오늘 유도 은메달리스트 허미미(22) 선수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행사를 마치고 인터뷰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일정이 좀 꼬였어. 라이드(Ride) 좀 가능해?”

14일 오전 10시30분 타 언론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1857∼1920)의 5대손인 허미미가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최한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오찬에 참석한 뒤 다음 일정이 있는 장소로 가야 하는데 사정상 허미미 혼자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미미가 서울 지리에 익숙지않다고 김 감독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 대답은 “예스”. 오후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차키를 집어들고 청와대로 향했다. 오후 1시면 끝난다던 행사는 1시 30분이 다 돼서야 끝났다. 영빈관 옆 주차장으로 김 감독과 허미미가 허겁지겁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점심식사에서 파리올림픽 유도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동메달 리스트인 허미미 선수와 잔을 부딪치고 있다. /대통령실

하늘색 선수단복을 입고 서 있는 허미미가 새까맣게 탄 우락부락 김 감독과 대비가 됐는지 허미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밝은 표정으로 사진 요청을 다 받아준 허미미를 황급히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지옥 같은 서울 도심교통상황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메달리스트와 단둘이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기자에게도 흔치 않다.

인사를 나눈 뒤 대화를 나눴다. 수줍은 표정으로 연신 휴대전화만 바라보던 그였지만 여러 질문에는 즉답이 나왔다.

─일단 여자 유도 57kg 이하급 결승전보다가 이 질문 정말 하고 싶었어요. 유도가 예전과 달리 심판의 개입이 너무 심해졌잖아요. 예전처럼 와일드함이 사라지고… 아쉽진 않았어요?

“엄청 아쉬웠죠. 공격 하는데 자꾸 위장공격이라고 하니까 참 답답했어요.”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 이하급 결승에서 허미미는 세계 랭킹 1위 크리스타 데구치에게 반칙패를 당했다. 연이은 허미미의 공격이 ‘위장 공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위장 공격이란 선수가 실제로 공격하려는 의도 없이 비슷한 행위만 보였을 때 주어지는 지도인데, 순전히 심판의 판단으로 주어진다. 유도에선 지도 3개를 받으면 반칙패로 기록된다.

허미미(사진 오른쪽)는 지난 7월 29일(현지시각) 파리 샹드마르스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유도 57㎏ 이하급 결승전에서 캐나다 크리스타 데구치와 연장 승부 끝에 벌점으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금메달 따간 데구치를 이겨본 적 있나요?

“네. 전에는 이겼는데 너무 너무 아쉬워요.”

수줍던 표정은 어디 갔는지 공격적인 그의 답변에 민감한 질문이 떠올랐다.

─데구치도 원래 일본·캐나다 이중국적자였잖아요. 그러다 캐나다 국적을 택했고요. 그러면서 “올림픽 출전이 수월할 것 같아서”라는 취지로 말했었죠. 미미씨는 일본에서 이미 잘 나갔잖아요. 근데 왜 굳이 평생 살아온 일본 대신 한국 국적을 선택했어요?

“할머니가 어릴 때 ‘우리 미미는 한국 선수로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던 게 있어서 많이 고민은 안 했어요.”

허미미에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다만 할머니가 허미미에게 남긴 유산은 컸다. 할머니는 허미미가 열두살 때 돌아가셨는데, 어릴 적부터 허미미와 살며 ‘조국 사랑’을 남긴 사람이었다.

2024 프랑스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은·동메달을 딴 허미미가 14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훈민 기자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지금이야 한국말도 많이 늘었지만 일본어가 더 편할테고 평생을 일본에서 살았잖아요. 한국 국적 택하는데 고민은 없었어요?

“별로 없었어요! 엄마랑 아빠가 ‘너 어린데 혼자 한국 가서 어떻게 살 거냐…'는 걱정을 조금 하셨는데 전 원래 걱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한국에서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일본에서 저는 인기가 좀 없었어요. 근데 한국 오니까 인기가 많던데요.(웃음) 다들 정말 너무 너무 잘해주세요.”

─지금 제일 친한 친구도 일본인이죠? 한국 국적을 택한다고 했을 때 뭐라고 했나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던데요. ‘간바테(힘내라)!’라고 응원해 줬어요.”

─그럼 어쩌다가 한국 선수로 뛰게 된 거예요?

“전국체전에 재일동포팀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님을 알게 됐어요. 그러다가 김지수 언니(2024 파리 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가 한국에서 이미 국가대표가 된 것도 알게 되고 할머니 생각도 나서 바로 한국 국적을 택해 국가대표팀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대화가 오가는 사이,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또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바로 광복회 행사장까지 데려다 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에선 유족 회원증 전달식이 열렸다.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 후손인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가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으로부터 독립유공자 유족회원증을 수여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 허미미, 이종찬 광복회장, 김진 부회장. /뉴스1

이게 웬 떡인가. 게다가 이번 올림픽 유도 혼성 단체전 동메달리스트 김지수(24)도 동행하게 됐다. 63㎏ 이하급 김지수는 2021년 재일동포 여자 유도선수로는 처음 한국 국가대표가 된 사람이다.

김지수에게도 물어볼 게 많았다. 언론 보도에서 김지수가 조선 선조 때 시조 김충선(일본명 사야가)‘이 하사받은 ‘사성(賜姓) 김해김씨’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지수에게 진짜 “사성 김해김씨 맞아요?”라고 물었다. 김지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휴대전화로 들리는 목소리는 “너는 ‘상주 상산김씨’야”였다.

2024 프랑스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김지수가 14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훈민 기자

─지수씨는 그럼 국적이 어떻게 된 거예요? 언론 보도 보면 귀화했다고 하던데.

“아니요. 저는 애초 이중국적자가 아니었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일본에서 태어나셨는데 한국 국적이세요. 저도 그냥 한국인 국적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거였어요.”

─아, 그럼 재일동포팀으로 전국체전 참가했다가 한국 국가대표에 먼저 도전한 게 지수씨고, 미미씨가 그걸 따라간 거군요?

“맞아요. 저는 원래부터 한국 국적이어서 걱정할 게 별로 없었어요.”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본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어요. 그 대회에서 우승하면 국가대표 선발전을 나갈 수 있는데 제가 한국 국적이니까 한국으로 오게 된 거예요.”

한국인이더라도 일본에서 나고 자란 스포츠 영재가 나오면 귀화를 권유하는 게 일본 체육계의 관례다. 그러나 김지수의 선택은 한국이었다.

김지수는 파리 올림픽 여자 유도 63㎏ 이하급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 선수 네덜란드 요아너 판 리샤우트를 절반승으로 이겼다. 다만 고질적인 손목 부상 여파로 아쉽게 개인전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다. 김지수 왼팔에는 한 뼘 길이의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김지수는 상처투성이였다. 오른쪽 눈은 실핏줄로 충혈돼 있었다. 경기 도중 온몸에 힘을 주면 안압이 올라간다. 핏줄이 안압을 못 이기면 안구는 피로 물든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김지수의 검붉은 눈 아래로 목걸이가 눈에 걸렸다. 올림픽 오륜기가 밝게 빛나는 금목걸이였다.

김지수의 목걸이.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가 새겨져 있다. /최훈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