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음주 뺑소니를 일으켜 구속 기소된 가수 김호중(33)씨 사건 이후 국회에선 이른바 ‘술 타기’(음주 운전 사고 후 또 술 마시기)나 ‘운전자 바꿔치기’ 등을 방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김씨의 극성 팬들은 국회의원들에게 “낙선 운동, 탄핵을 하겠다” “당신들은 악마 같다”며 전화·문자 폭탄 등을 날리고 있다. 의원과 보좌진은 “팬덤에 한번 좌표가 찍혀버리니 정상적 의정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은 최근 술 타기를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일명 ‘김호중 방지법’을 발의했다. 음주 운전으로 세 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영구 박탈하거나, 술 타기를 아예 방지하는 조항도 담겼다. 민주당 서영교,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도 최근 취지가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김호중씨 팬들은 이런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하거나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은 물론이고 지역 사무실에도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사무실 앞으로 달려가 시위하겠다고 위협하는 전화도 걸려온다.

박성훈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음주 뺑소니 혐의를 피하고자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김씨 범행 수법이 상세히 알려져 모방 범죄도 속출했다”며 “국민 안전을 위해 낸 법률이지 특정인을 비난하겠다는 취지가 아닌데 이런 반응은 당혹스럽다”고 했다. 신영대·박성훈 의원이 낸 법률안 원문을 보면 김호중씨 이름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최근 문제가 된 술 타기 등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법률안에 사건 가해자·피해자 등 특정 인물 이름을 따 ‘○○○법’ 같은 별칭을 붙이는 것은 정치권에서 흔한 관례다. 그런데도 김호중씨 팬들은 “법이 통과되면 낙선 운동에 나서겠다”며 국회 입법예고 게시판에 1만 건 넘는 반대 글을 쏟아냈다. “반성하고 있는 젊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법이다” “왜 사람을 평생 죄인으로 만드냐” 같은 의견도 있었다. 18일 밤까지 박성훈 의원 법안에 6200여 개 반대 의견을 비롯, 서영교(4500여 개), 신영대(1300여 개) 의원도 ‘반대 폭탄’의 표적이 됐다.

그래픽=김의균

전문가들은 극렬 팬덤 문화가 전화·문자 폭탄으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과거엔 여야의 주류 정치인 팬덤이 비주류 의원들을 압박·제거하고자 이런 일을 했는데, 이제는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 교수는 “자기편이라면 불법·부도덕도 일단 옹호하고 보자는 그릇된 군중심리가 정치권에서 시작해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며 “각종 비리 정치인들이 ‘나는 무죄’ ‘마녀사냥’ ‘정치 탄압’이라고 무조건 주장하는 모습을 가수 팬클럽이 본받은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팬덤이 국회의 입법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법안의 핵심인 모방 범죄 반복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댓글 테러로 입법 기관을 부당하게 압박하는 현상만 남았다”고 했다.

한편 일선 경찰은 음주 음전 혐의를 피하고자 ‘김호중 따라 하기’ 행태를 보이는 운전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교통과장은 “음주 운전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면 ‘방금 술을 마셨다’며 다 마신 술병을 흔드는 피의자가 많아졌다”고 했다. 음주 의심 차량이 경찰 추격을 피하다 인명 사고를 내거나, 고위 공직자까지 음주 측정을 거부하며 ‘버티기’를 하는 일도 벌어진다.